홍성담의 그림창고


디자이너가 허공에 매달아 놓은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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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氣運’이 허공에 떠돌고 있다.

그 ‘기운’이 수수밭위에 더운 바람처럼 둥 떠있기도 하고, 봄을 기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 뒤편 하늘에 걸려 있다가,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허물어진 언덕 주변을 배회한다.

이 ‘氣運의 球体’는 디자이너 손영환이 만화경으로 빗어 낸 우리들 삶에 대한 응집체다.
파편화된 물상의 단면이 고도의 기하학적 조합을 통해 그것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극히 개인적인 관음증적 미학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만화경이 갖는 마술(魔術)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무심하게 흘려버린 온갖 물상의 조각들을 만화경 안에 봉인한다.
이 작은 편린들은 만화경 속에서 무한 분열을 일으키며 경이로운 기하학적 분배와 결합을 끝없이 반복한다. 만화경은 그 조각들이 다각적인 모습으로 분해되어 중층적으로 자기 증식을 이루며 카오스chaos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 동시에 이 혼돈의 모습은 만화경에 주어진 각도에 따라 연속무늬를 무한 확장 하면서 코스모스comos를 생성시켜 새로운 모습으로 전환한다.  
아무리 하잖은 것이라도 카오스모스chaosmos의 만화경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생명의 구체로 응집 된다. 만화경이 그의 숨결에 따라 만다라(曼陀羅)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작가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풍경들을 디지털로 재해석하여 만든 배경화면 위에 이 새로운 ‘기운’이 떠다니고 있다.
우거진 잡초 더미 속에서 가을빛에 말라가는 풀잎들과 한 몸을 섞던 그 ‘기운’이 어느덧 적막한 슬픔의 덩어리가 되어 허공을 맴돌다가 어느 추녀 끝에 혼불처럼 머물러 있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무심코 뱉은 한 마디의 말, 길을 걷다가 발 뿌리에 채이는 작은 돌멩이 한개, 시들어 빠진 꽃잎 한장, 우리들이 날마다 뿜어내는 사랑과 미움, 증오, 기쁨과 비애, 환희와 분노, 삶속에서 겪게 되는 온갖 욕망..... 이런 모든 것들이 만화경 속에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항으로 얽혀 거대한 생명의 구체를 이룬다.

그는 만화경이라는 유희과정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 중에 ‘사라지는 것’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사라진다’라는 말은 일종의 관념일 뿐이다.  한 생명의 죽음이 신체의 소멸일 뿐이지 그 영혼까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듯이, ‘사라진다’는 말은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적 질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이다.
예술가는 삶의 현실을 관통하여 그 너머에 숨어 있는 것을 상상한다. 이러한 창조의 과정은 우리들 삶에 대한 내밀하고 자상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의 만화경 내부에 놓여진 욕망의 조각들은 소멸과 분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정신과 물질, 시간과 공간, 생성되는 것과 결정적인 것, 직관과 지성, 자유와 관습이 서로 내부적 상호 침투에 의해 질적 변화, 즉 창조적 진화를 발견하게 되고 마침내 생동하는 통일성을 이루게 된다.
그가 만화경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 ‘생명의 구체’는 이러한 과정, 즉 ‘있다 - 없다 - 새롭게 있다’라는 변증법적 과정을 밟으며 탄생된다.

이 ‘생명의 구체’는 천민자본주의가 쏟아 낸 온갖 욕망의 쓰레기들도 우리들 육신의 한 조각이며, 좀 더 나은 미래를 가꾸어내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조차 함께 부둥켜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상징’한다.
상징의 중요한 효능은 의문의 여지없이, 그것이 자신의 상태를 벗어나려는 모든 인간의 신비한 욕구의 구체화된 반영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의 천박성에 대한 한 디자이너의 절망감과 허무감이 만화경의 유희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결국 삶과 생명에 대한 절박한 희망을 ‘생명의 구체’로 상징화 시켰다.

그가 십수 년 동안 빗어 낸 ‘생명의 구체’를 세 번째 개인전 이후 다시 새롭게 우리들 앞에 펼쳐 보인다.
그의 ‘생명의 구체’가 상징하는 바를 통해 생명과 자연, 그리고 삶의 일상들이 수놓은 희망의 거대한 낙관의지를 우리도 함께 느낄 수 있는 행운을 모처럼 누리게 되었다.       홍 성담(화가) / 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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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디자이너가 허공에 매달아 놓은 ‘상징’ - 손영환兄 개인전 서문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22 08:30
조회수: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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