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이 시대의 모든 천박성을 향해 총을 겨눈다

우리가, 정말이지 더러운 세월을 살고 있다. 이 무정한 세월은, '건전한 보수'로 가장한 천박한 욕망들이 미쳐 날뛰는 이 기만적인  현실은 누군가가 어거지로 가져다 준 게 아니다.

36년의 식민잔재를 무엇 하나 제대로 척결하지 못한 채 교과서 왜곡사태에 민족의 이름을 말해야 하는 이 미천한 역사며, 1980년 광주의 학살극의 단 한사람의 책임자도 처단하지 못한 채 이 땅에 민주주의가 왔다 말하는 이 천박한 지성이며, 생존 차원의 인권조차 확보되지 않은 이 땅의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고 인권 대통령이라 불리는 이 치장성 욕구들이 다름 아닌 80년대 수많은 고문과 투옥 그리고 분신행렬로 이어졌던 민주화의 길을 우리 스스로 너나 할 것 없이 경멸하기에 애쓰고 애쓴 결과들이다.

우리는 시대가 변했다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각자의 능력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며, 최루탄 몇 모금 삼킨 육신을 이제 쉬게 한다며 앞다투어 떠나기 시작했다. 곧 이어 우스운 일들이 벌어졌다.

제 속옷서답 같은 글 나부랭이들을 자전적 소설이라 우기며 80년대 그 찬란한 역사의 기억들을 되새기는 글들을 감히 싸잡아 후일담이라 비웃었다.
종기를 짜낸 고름 같은 복제물들을 새로운 미술이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는 말로 우겨대며 노동자들의 땀과 열사들의 피로 채색된 민중미술은 싸잡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폄하 하였다.
서태지를 우리 음악의 대안이라고 억지로 우기며 지난 80년대 내내 우리 민주화의 행렬을 위무 했던 민중가요들은 촌스러운 것으로 단박에 폐기처분 해버렸다. 그 시절, 천하의 서태지를 칭송하지 못하던 내가 당한 곤란이라니!
진창에 빠진 정치를 '견인'하겠다며 학살자들이 되물림한 정당에 찾아 들어간 이들은 십중팔구 오히려 이 천박한 현실정치에 견인되어 그 앞잡이 노릇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었다.

급기야 제 청춘을 불사르며 우리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헌신성과 진정성으로 장식했던 시절을 제 스스로 비하하는 풍조마저 만연되었다.
생각해보라. 그런 우리가 나이 환갑에 이르도록 제 아비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그 가련한 소설가보다 나은 게 무어란 말인가.

이런 이야기들을 나 같은 무식한 환쟁이도 다 아는 이야기들을, 도저한 학문적 이력에 화려함을 자랑하는 자들이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신군부 앞에 '납짝' 엎드려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학살자를 구국의 지도자로 떠받든 저 족벌언론의 더러운 역사를 모를 리 없는 그 고매한 지성들, 예술가들이 이제는 그 족벌언론 앞에 '납짝'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다.

물론 자기네들이 내놓은 학술적, 문화예술적 상품들이나 그 알량한 학식을 팔아먹기 위해서는 저들에게 밉보여선 곤란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오늘 그 고매한 지성들, 예술가들의 매혈행위는 생존 전략 수준을 넘어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위엄을 거침없이 팽개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생각하노라면 기가 막힌다. 우리가 고작 그 더러운 수구언론 문제에나 매달리느라 오늘 명동성당의 민주노총 지도부의 농성이나, 세상의 수많은 진정한 싸움들을 외면하고 마는 이 현실이. 고작 이런 세상을 만들려고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아파했던가.

이 기막힌 현실을, 지금 우리 안에 가득한 모든 천박한 기만들을 모조리 '가늠쇠' 위에 올려놓는다.
80년 오월 내 손에 쥐었던 우리 심장처럼 뜨겁던 그 엠원소총의 가늠쇠 위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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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시대의 모든 천박성을 향해 총을 겨눈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17 14:15
조회수: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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