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현대미술 - 그 저항과 자유에 관한 로망

[1. 저항과 자유]

자유로운 상상력을 얻기 위해서 ‘저항’은 시작된다.
저항은 물론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심지어 기술,과학,사상등도 이미 주어진 조건과 환경으로부터 저항을 통해 발전한다.
주어진 낡은 질서로부터 ‘새로운 혼돈’을 찾아내는 일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예술가에게 ‘저항’이라는 명제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진리이다.
마네는 살롱전에 낙선한 그림 ‘풀밭위의 점심’으로 당시의 가식적인 프랑스 사회의 이중적 도덕성을 지탄하며,
또한 고전주의의 근엄한 화풍을 비웃었다. 풀밭에 비스듬히 기대고 누워있는 사나이가 쓰고 있는 모자는
당시 파리 대학의 학생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낮에 공원에 와서 옷을 모두 벗고 점심을 하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당대 사회의 도덕성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 그림의 제작배경을 이해하자면 이것이 ‘그림’이라기 보다는 당대 부르조아 사회에 내던진
공격적인 ‘포스터’라고 해야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이 그림은 ‘포스터’다.  
이 그림이 낙선전에 출품되었던 당대의 스캔들은 바로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이 그림과 또 한 작품 ‘올랭피아’ 같은 사실주의 작품들에 의해 현대회화는 기지개를 켜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올랭피아’는 매춘부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비너스가 아닌 거리의 여인이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도덕적 모욕이었다.
올랭피아는 신선미나 인간미도 없이 얼굴은 겉늙고 손은 더러우며 주름 잡힌 발에는 낡아빠진 슬리퍼를 걸쳤다.
몸에는 시체처럼 반점 같은 것이 보이고 침대보와 시트는 석탄재가 묻은 것처럼 누추하다.
성서에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매춘부는 당대의 고통 받는 모든 여성을 상징한다.
마네는 ‘올랭피아’ 이후로 누드화를 다시는 그리지 않았다.

[2. 저항과 성찰]

자기 성찰이 없는 저항은 방종이다.
성찰은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이러한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기를 억압하는 당대의 ‘가위눌린 질서’를 거부하기 위해 예술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 고통 뒤에 찾아올 자유로운 상상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상상력, 즉 가위눌린 질서를 해체한 다음에 도달하는 혼돈(카오스)은 창조적 예감을 만들어내는 비옥한 거름이다.

성스러운 어릿광대 ‘피카소’는 당연히 20대에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을 통해 당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모순들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그 시기를 ‘피카소의 청색시대’라고 부른다.
청색시대의 피카소의 그림들은 시적인 섬세함과 개인적인 우울함의 놀라운 표현이며,
또한 이 시기는 피카소의 스타일이 고전주의에서 현대적인 추상예술로 전환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청색시대는 젊은 피카소가 고전주의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전주의를 버리고
입체파와 현대적 추상예술로 향하는 첫걸음을 잉태하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 볼 때는 우울과 체념으로 특징 지워지는 시기다.
이 후 큐비즘(입체파)이라는 ‘해체의 전설’과 그의 말년 그 발칙하고 자유스러운 작품들의 아우라를 형성하는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도
모두 그의 ‘청색시대’가 만들어준 자기성찰의 미학을 통하지 않고는 한낱 시대가 낳은 어릿광대의 응석이 되어 버릴 것이다.

게르니카의 학살을 그린 작품 ‘게르니카’는 파시즘의 공포 앞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의 외침이자 저항의 상징이다.
피카소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한 것은 전쟁, 맹목적인 폭력, 어린아이들의 죽음, 어머니들의 고통등 모두 인류의 공통된 비극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물감을 흰색과 검정색으로 한정했다. 형태는 공포에 억눌린 것처럼 납작하고 단순화되어 강한 극적 효과를 주고 있다.

성스러운 어릿광대 ‘피카소’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어떻게 예술가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냉담한 상아탑에 갇혀 다른 사람들이 그리도 풍부하게 제공하는 삶을 외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닙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회화는 행복한 거실을 치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적과 싸우며 공격과 수비를 행하는 하나의 전투무기입니다”

그의 작품 ‘게르니카’가 주는 위대한 감동도 역시 ‘청색시대’라는 자신과 시대의 성찰의 고통스러운 관문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는 증오와 무지로 눈먼 피비린내 나는 폭격과 황산폭탄에 놀라 부릅뜬 눈으로 ‘게르니카’를 그렸다.
예술가에게 창작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수많은 타인의 응답이다.

다시 ‘피카소’가 말한다.

“스페인 전쟁은 민족과 자유에 거역하는 반동세력과의 투쟁입니다.
예술가로서 나의 삶은 오직 반동에 대한 투쟁, 예술의 죽음에 대항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내가 반동분자들과, 더욱이 죽음과 동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어떻게 한순간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현재 작업하고 있는 그림에 [게르니카]라는 이름을 붙일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나는 스페인을 고통과 죽음의 바다로 빠뜨린 군부(軍部)에 대한 증오를
명백히 표현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외침, 부녀자의 외침, 기둥과 돌들의 외침, 벽들의 외침,
침대와 의자와 커튼과 깨어진 항아리들의 외침....... 바로 이 외침들을 기록할 것입니다“

[3. 창조적 예감으로 가득한 예술가의 영혼은 ‘지렁이’다]

‘지렁이’는 흙속에서 산다. 인간이 버린 ‘욕망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꿈틀거리며 산다.
‘지렁이’는 한 몸에 암수가 있다. 그리고 일년내내 알을 낳는다. 지렁이의 이러한 생산적 행위가 땅의 지력을 높여준다.
인간이 내다버린 汚水로 가득한 땅을 정화하는 작용을 한다.

뉴욕 뒷골목의 ‘지렁이’ 앤디워홀은 잡식가다.
워홀이 만든 영화 ‘첼시걸스’는 허름한 첼시호텔 방에서 벌어지는 생활을 찍은 각기 독립된 1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약 3시간 동안 마약과 섹스와 폭력 장면으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마크 트웨인, 토마스 울프, 아더 밀러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유명해진 이 허름한 호텔엔
젊은 화가들이 작업실을 옮겨와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다.
걸작품은 파르테논 신전이나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고상한 장소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술집, 지저분한 아뜰리에, 낡은 호텔방의 쓰레기통에서 태어난다.
프랑스나 미국의 현대미술은 가난한 화가나 시인들이 들끓는 낡고 누추한 곳에서 끊임없이 창조적 예감을 피워 올렸다.
그들에게 ‘가난’이란 불편한 짐이 아니라 그 ‘가난’에 진정으로 저항하므로서 오히려 자신을 성찰하고 자유스러운 상상력을
확장하는 훌륭한 계기가 되었다.

미국 우드스톡(Woodstock)에서 열린 최초의 팝뮤직 페스티벌에 40만의 젊은 인파가 모여들었던 1969년 쯤에
사람들은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워홀 그리고 라우센버그와 로젠키스트, 자스퍼 존스 등을 미국 공격에 나선
신사실주의 화가들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앤디워홀 스스로는 “나는 미국을 숭배한다. 내가 그리는 이미지는 오늘날 미국의 기초가 되는 비인간적인 생산품....
또 우리가 양식으로 삼고 있는 일시적이고 실용적인 상징이다”라며 비웃는다.

그는 매스미디어에 의해서 신성화 된 것들을 조소하며 일상화 시켜버린다.
마치, ‘현대의 인간은 소비사회 속에서 대량으로 제조된 상품(켐벨표 스프 상자)과 별 차이가 없다’라는
‘살을 아리게 하는 그의 비극적 서사’가 그의 작품 속에 들어있다.
워홀의 작품을 “자본주의적 사실주의 혹은 미국식 생활방식의 찬양”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종차별에 항거하는 봉기가 일어났다’라는 그의 작품에서 군중을 공격하고 있는 개들과 경찰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렌지색 푸른색 빨강색으로 그려진 전기의자는 오히려 무시무시한 고발행위라 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집착으로까지 보이는 주제의 반복은 죽음과 폭력의 진실이라는 기초 위에
미술을 다시 세워야할 목적까지 내 보이고 있다.

미디어 사회의 복제미술(판화) 상인, 앤디 워홀은 뉴욕 뒷골목의 ‘지렁이’가 되길 자임했다.
그의 작업에서 주제를 수없이 반복하듯이, 그의 작품을 실크스크린으로 수없이 복제해 내듯이
그는 흙속의 지렁이처럼 끊임없이 알을 낳았다.
인간의 욕망이 배설구를 찾아 밤낮없이 떠도는 뉴욕 뒷골목에서 그는 ‘예술’이라는 알(卵)을 낳았다.
뉴욕의 대량소비 그리고 인간의 무한한 탐욕이 토해내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그의 작품들은 쉴새없이 꿈틀거리며
인간이 버린 오수(汚水)를 정화해 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4. 자유의 안(內)과 밖(外)]

예술가는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모든 질서를 거부한다.
‘질서’란 ‘창조되어버린’ 모든 것이다.
‘창조되어버린’ 것은 이미 낡은 질서다.
예술가는 오늘 아침에 이루어 놓은 자신의 모든 창조행위조차도 부수어 버리고
오늘 밤엔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예술가는 날마다 저항해야 하고, 날마다 성찰해야 하고, 날마다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그래서 예술적 창조의 작업은 날마다 혼돈(카오스)의 문을 열어야 하는 일이다.

시커먼 저 고통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혼돈’의 문이 열린다.
그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의 형태를 찾아내는 것이 ‘창조’다.
그러므로 예술이란 시커먼 고통의 잿더미 위에서 한 가닥 가녀린 하얀 꽃 순백하고 순결한 하얀 꽃을 피워 올리는 작업이다.
우리시대 가장 고통스러운 현장을 찾아나서는 ‘자유’는 예술가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일 수도 있다.
그 고통에 저항하는 예술가만이 자유로운 상상력의 날개를 달 수 있다.

어떤 예술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옥죄는 사회적 시스템, 제도, 사상, 문화, 정치, 역사등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과감하게 몸을 던져 도전한다.
그것들의 부조리를 비꼬며 풍자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예술적 모든 행위를 무기화하여 선전선동 한다.

또 다른 예술가는 ‘캔버스 안에서의 무한자유’를 얻기 위해 날마다 고통스러운 혼돈의 세계를 꿈꾼다.
이미 ‘창조되어버린’ 매체나 기법이나 형상으로부터 저항하며 자신만의 표현세계를 확충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예술적 세계를 따로 떼어놓을 필요는 없다.
이 두 가지의 유형은 서로 다른 길 같지만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목표는 ‘창조적 예감’의 세상이다.
인격과 비인격, 생명과 무생명이 모두 함께 받들어 올려지는 세상, 평화의 세상이다.
예술가의 가녀린 영혼이 자신을 고통 속에 끊임없이 내던지면서
건져 올리려는 세상, 창조적 예감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세상이다. (광주시립미술관 인문학 강좌 / 2010.5.20)


[그림 슬라이드]

1. 풀밭위의 점심식사 / 1864년 / 에두아르 마네
2. 올랭피아 / 1864년 / 에두아르 마네
3. 자화상 / 1901년 / 파블로 피카소
4. 삶 / 1903년 / 파블로 피카소
5. 장님의 식사 / 1903년 / 파블로 피카소
6. 다리미질 하는 여인 / 1904년 / 파블로 피카소
7. 웅크리고 있는 여자 / 1902년 / 파블로 피카소
8. 게르니카 / 1937년 / 파블로 피카소
9. 한국에서의 학살 / 1951년 / 파블로 피카소
10. 우는 여인 / 1937년 / 파블로 피카소
11. 자화상 / 1966년 / 앤디 워홀
12. 마이클 잭슨 / 1984년 / 앤디 워홀
13. 마릴린 먼로 / 1967년 / 앤디 워홀
14. 마오 / 1973년 / 앤디 워홀
15. 캠벨 스프 / 1969년 / 앤디 워홀
16. 코카콜라 / 1961년 / 앤디 워홀
17. 레닌 / 1986년 / 앤디 워홀


  -목록보기  
제목: 현대미술 - 그 저항과 자유에 관한 로망/ 홍성담
이름: damibox


등록일: 2011-05-20 14:13
조회수: 1332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