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죽고 또 죽으면 살 수 있다.

이것은 순전히 한 화가의 넋두리입니다.
예술가란 모름지기 한 시대의 성감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점잖은 말로 하자면 ‘잠수함 속의 토끼’라고 해야 할까요?
요즘은 ‘잠수함’이라는 말조차 꺼내기가 무서운 세상이 되었지요.

누군가 넌지시 말해줍니다.
‘이젠 편한 그림그리고 편하게 좀 살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작가라면 늘 현실의 모순을 쉽게 외면할 수 없다는 게 저의 저주받은
운명인것 같습니다. 늘 아픈 눈을 뜬 채로 있어야 하고....
날마다 가슴아픈 것들과 추악한 모습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하는 그 지랄 같은 운명의 소유자 인 것입니다.

저를 정말 이해해 주고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또 저에게 귓속말로 넌지시 이야기 합니다.
‘너의 나이가 신중해야 할 때다. 이젠 중견작가로써 산처럼 무겁게 움직여야 할 때다’

나는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모든 처신과 작업의 내용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며,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단정적인 판단을 피해야 하며,
사물과 현상과 상황의 미묘함과 모호성과 복잡성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나는 대답하기에 어려운 질문, 밤새 목청을 높여 대화해도 풀리지 않는 이야기들,
오르지 못한 산, 미완의 꿈을 사랑합니다. 때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러한 미완의 과제들이 ‘삶의 귀중한 여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모든 것에 대하여 반드시 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신중함과 분별있는 태도라는 것이 기실 비열함을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이었음을
인류역사는 물론 우리들 지금 현실에서 흔히 보았던 일입니다.
조심성이 자신의 뜻과 달리 실제 비겁함이 되고, 용의주도함이 기실은 일종의
권력에 아첨이나 변질이 될 때 말입니다.
사실은 이것이야 말로 인민대중을 팔아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태도라고
저는 마음속으로만 다잡아 생각해 둡니다.

이번 오월항쟁 30주년 기념하여 광주 전역에서 베풀어진 각종 다양한 기념잔치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온갖 학술세미나, 온갖 추모형태의 문화제, 예술을 빙자한 온갖 음악 미술 잔치들...
전부 하나같이 모호하고 추상적이고 아리까리한 언어들과 색깔들과 술수들의 성찬이었습니다.
때로는 이미 유통시한이 지난 썩은 음식들도 부지기수였고, 설익은 음식, 간이 전혀 맞지 않는 음식,
때로는 프라스틱으로 만들어 외양만 먹음직스럽게 색칠해 놓은 가짜 음식도 있었습니다.
올 오월행사에 쳐 박은 예산이 물경 20억원이 넘었다니... 그런 다양한 음식상 제사상이 차려졌겠지요.
이러저러한 잔치상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수많은 음식상 제사상 앞에서 오월영령들은
아마 길을 잃고 잠시간 이승의 ’오월외박‘을 마감하고 저승에 잘 찾아갔는지 의문입니다.
저승에 잘 안착했다 하더라도 지금쯤 소화불량증에 걸려서 설사를 하거나 가스활명수를 몇병씩 들이켰을 것입니다.

사실 이번 오월에 가장 중요한 현실적 사항은 동아시아에 새롭게 돋아나고 있는 국가주의에 대한
단호하고도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국가주의는 자국민에게 국가폭력을, 타국민에게 전쟁을 만들어내는 악의 축입니다.
광주는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극악한 국가폭력에 대해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던 곳입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 국민동원령 - 죽음의 에로티즘
중국- 확장된 경제 - 빈부격차 -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 자본주의에 대한 축적부재
한국 - 분단 - 천안함 - 월드컵 - 두 개의 국가주의

국가주의는 공동체를 파괴 -파편화된 개인들의 틈사이로 국가주의를 확대

광주오월은 피와 밥으로 맺어진 도시 공동체- 콤뮴으로써 자기 프로그램
불보듯 뻔하게 다가오는 아시아의 불행한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공동제회복에 대한 대안을 제시
이젠 문화적 역사적 책임을 유럽에 떠넘길 때가 오히려 행복했다.
돈가는데 마음간다.- 세계 경제의 중요한 축이 아시아로 넘어왔다.
대안 - 개인과 개인의 개별성이 배합된 전체적 중심을 건설하는 것.
정치가 우리들 삶의 진보와 개혁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문화와 생명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삶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만이 승리한다.

오월을 죽이고
정치를 죽이고
문화중심도시 빈껍데기를 죽이고

진보양심세력- 희생 봉사 헌신의 정신의 부재- 국민들이 그 권한을 회수

해방과 분단 65년 광주항쟁 30년
나의 조국은 여전히 식민주의 유산과 오월학살의 환경과 싸우고 있다.
나의 붓도 역시 아직도 이런 구태의연한 것들과 싸워야 하는가? 작가의 운명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낡아빠진 뻔한 것들을 새롭게 이야기 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가?

내 사랑하는 사람이 저에게 다시 넌지시 이야기 합니다.
‘분노를 눅이고 내면의 슬픔을 그려야 해.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려야 해. 이제부턴...’

나는 르노와르를 마티스를 보나르를 지지합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미학을 지지합니다.
브드러운 여체의 미학과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그림들에 대해서 전혀 유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우리들이 그러한 미학을 즐길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토대가
바로 인민대중 그들의 살갗을 터지게 하고, 그들이 한끼 밥을 얻기 위해 흘려야 하는 땀과 눈물의 바다위에,
그들이 느끼는 개인적 불안위에 서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한번 명백히 뒤돌아 봐야 합니다.

여기엔 광주사회를 움직이는 리더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섬세한 눈이 필요.
일례로 광주시립미술관만 보더라도
관장을 시장이 임명
학예관이 2명, 15년 비엔날레를 직간접으로 지원한 학예사들의 역량이 있습니다.
미술관은 그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빌바오 구겜하임미술관
미술행정, 미술경영을 전공한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다.
비엔날레도 이젠 광주의 역량으로 충분히 잘 해 낼 수 있다고 확신.
이젠 광주컴프렉스를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과도한 컴프렉스가 과도한 잔치상을 차리는 법입니다.

광주는 동아시아의 별입니다.
인권 민주 평화 - 이미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상업화된 이 보편적 가치들을
원래의 고귀한 자리로 되돌려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광주대동정신 대동세상 피와 밥으로 맺어진 광주공동체....
이것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민사회의 헌신과 희생.
저항과 고통을 넘어서 창조적 예감의 시대로
상상력.
현실이 발목을 잡기 때문에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한다.
상상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현실의 진면목을 보지 못합니다.
상상력.
저항을 넘어서 창조적 예감의 시대로
여러분과 시민사회는 조금더 창조적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광주 YMCA 강연초록/ 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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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고 또 죽으면 살 수 있다 / 홍성담
이름: damibox


등록일: 2011-05-20 14:39
조회수: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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