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죽 음' 과 '밥 한 그릇'

삶이 엄중한 것 만큼
죽음 또한 엄중하다.
그러나 죽음에 관하여 설명함에 있어서
'죽음'자체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어려움이 있다.
죽음은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것이 불시에 닥친 생이별로 나타날 때
이 죽음은 주변의 모든이들에게 부정을 태운다.
그가 살아온 지난 삶이 고단했을 수록 그의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더욱 슬픔을 준다.
우리는 이것을 '부정탓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그의 죽음과 또 우리에게 어김없이 닥칠 미래의 죽음을 애써서 부정해 보는 것이다.

그가 고단했던 삶을 막음하고
아직도 살아남은 피붙이들이 둘러 앉아 초상을 받들고 있다.
병풍뒤 송판곽에 담겨진 그의 시신이 이 밤을 지새우면
내일 피안의 바다를 건너 저승의 세계로 들어간다.
오늘 밤이 산 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다.
그래서 밤하늘은 더욱 아득하고 별은 눈물처럼 총총하다.
마당에 지펴져 너울대는 모닥불 만이
마치 살아생전 삶에 대한 망자의 열정을 말해주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망자와의 이 이별의 마지막 밤은 더욱 슬프다.

밤하늘 뒷산마루에 어슷하게 비켜서있는 반달이
마치 망자를 싣고 삼도천을 건너는 배 처럼 보인다.
피붙이들의 곡소리가 더 커지고
더불어 문상객들도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매 왜 이렇게 서러운 것만
새록새록 남아있는가 싶어 각자 눈꼬리에 눈물 방울을 매달 즈음
그 마을 술취한 재간꾼 한 사람이 마당 한 가운데 모닥불을 돋우며 어김없이 한 소리를 밷는다.

- 허이구! 뭔 세상이 이리도 슬프냐, 똘 처럼 흐르는 내 눈물 좀 닦아야 쓰것다.
  수건 좀 주어 봐!

옆에 앉은 누군가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건네 준다.
그는 대강 눈물을 닦은 시늉을 하고 나서 수건을 돌돌 말아 등뒤에 쑤셔 넣고
몸을 앞으로 옹당거려 살푼살푼 걸어나오며

- 훠이! 훠이! 울 동네 꼽사 사자가 납신다.

일단 꼽사춤으로 마당을 한바퀴 돌면서 몇가지 재담을 흥건하게 풀어내는데
그 재담의 주제가 모두 마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엊그제 보리밭에서 연애 하다가 들킨 웃동네 청년의 색쓰는 소리며
보름전 열다섯마리를 낳은 영철네 암퇘지 새끼 낳은 광경이며
이러저러한 삶의 현장을 재담과 몸짓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마당에 빙둘러 앉은 사람들은 눈물을 지우며 비로소 삶의 세계로 천천히 돌아 온다.
사람들이 파안대소를 하고 이제 마당의 분위기가 부정탄 죽음으로 부터 벗어나고 있다.
이때 이 재간꾼이 망자의 피붙이인 상주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 허구야! 저 상주넘은 얼매나 좋을꼬, 여그 사람들 앞에선 서럽게 우는 척 하지만 뒤간에 가서는 실실 웃을 것이고만!

상주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화난 표정을 하여 꾸짓는다.
- 허여! 오늘 슬프나 슬픈 상주 앞에서 무슨 그런 쌍소리인고?

다시 재간꾼이 아득한 밤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호방하게 웃음을 던진 다음,
- 그것이 뭔소리여! 시방 저 사람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여!
   이 석삼가뭄년에 밥 그릇 하나 덜었으니 이것이 복이 아니면 뭣이 것어!
   그렇지 않음 감, 내 말이 맞제?

마당 여기 저기서 '마저! 마저!' 외치는 추임새가 들리면서
상쇠가 꽹과리를 요란하게 쳐대며 마당으로 나오고
북장구도 따라서 일제히 삼채장단을 때리며 마당을 돈다.
사람들이 노란 삼베상복을 입은 상주를 앞세워 함께 어우러져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마당을 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망자와의 이별의 슬픔을
부정탄 '죽음'의 편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끌어 내 온다.
'밥' 한 그릇을 통해 죽음과 삶을 화해 시킨다.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덩실덩실 춤을 추는 상주의 삼베 옷 등허리에 아득한 밤하늘 별똥이 떨어진다.

진도의 어느 초상집에서  '다시래기' 놀이중 한 부분이다.    [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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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 음' 과 '밥 한 그릇'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17 14:12
조회수: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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