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간코쿠 야스쿠니-1 / 130 x 324 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09.08.02

[영화 ‘두 개의 문’과 홍성담의 ‘간코구 야스쿠니’  -"깨어있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계속된다” ]
    

 영화 ‘두 개의 문’을 보았다.
‘두 개의 문’은 2009년 1월20일 벌어졌던 용산 철거민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 등 총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참사의 이유와 속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큐멘터리는 픽션과 달리 풍자와 은유가 없다.
날 것 그대로의 팩트만 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아프게 한다.

 이 영화는 해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 같다.
“이 야만의 시대에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 반복되는 것인가?”

 용산재개발로 쫓겨나게 된 세입자들은 정당하고 현실적인 보상을 원했고, 자기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떠한 주류언론도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실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1월 19일 새벽 5시33분에 철거예정인 건물을 점거하고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여 시위에 들어간다.

재개발업자가 고용한 야만적인 용역회사 직원들의 폭력과 그보다 별로 나을 것 없는 공권력의 이름을 쓰는 폭력으로부터
자기들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화염병의 재료인 시너 등 인화물을 쌓아놓은 것은 자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은 몰랐다.
시위를 시작한 지 불과 25시간 만에 자기들이 불타죽고, 자기들이 가해자로 법의 판결을 받게 될 줄은….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이 영화는 철거시위자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용산참사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경찰특공대원과
남일당 건물을 바깥에서 바라보던 취재용 영상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철거시위자들이 담은 영상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경찰들도 역시 국가권력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경찰특공대원들은 망루에 접근할 수 있는 두 개의 문이 어디있는지도, 망루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지 어딘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현장으로 출동하고 크레인에 매달은 컨테이너를 통해 옥상에 진입하는 무리한 진압을 하게 된다.
그들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없이 위로부터의 명령이기 때문에 무조건 열심히 한 것이다.

 이 영화는 국가 공권력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당초 개발업자와 세입자 간의 문제에 공권력이 개입함으로써 공권력이 무엇을 위해, 왜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개발업자가 고용한 용역들의 폭력성과 악랄함은 상상을 불허한다.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경찰이 화염병에 맞을까봐 용역이 방패로 가려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투입된 공권력이 세입자나 철거민들의 편이 아니라 개발업자의 편이라는 단적인 증거다.
공권력이 힘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게 아니고 힘있는 사람의 원활한 업무추진을 위해 사용된 것이다.
경찰특공대원은 국가가 시키니까 했다고 했고, 법원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판시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너무나 많다.

 광주가 낳은 화가 홍성담의 그림 ‘간고쿠 야스쿠니’는
한국의 상황도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일본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그림의 제목에 나오는 ‘간코쿠’는 한국이란 뜻이고
‘야스쿠니’는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Yasukuni Shrine)의 줄임말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있는 일본 최대의 호국신사 이름이다.
그러므로 ‘간코쿠 야스쿠니’는 한국의 야스쿠니라는 뜻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야스쿠니’라는 말 자체는 국가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일황이 사는 황국의 북쪽에 있는 신사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몰자를 호국의 영령으로 제사하고,
천황까지 참배함으로써 군국주의를 고무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젊은이들은 국가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에서 술잔을 나누고, 죽어서 야스쿠니의 뜰에 피는 사쿠라꽃으로 환생하여 만나기를 기원하며
가미가제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자기 나라만 평안하면 남의 나라 사람들은 죽어도 되나?
이 극한적 폭력의 원인이 바로 국가와 천황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어떠한가?
오로지 돈을 위해서라면, 오로지 개발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인권과 생존권을 무시하는 한국의 현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작가는 꼬집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림 좌측에 야스쿠니, 우측에 파란 기와를 가진 집을 배치하여 보는 이에게 두 집의 비교를 요청하고 있다.
또한 국가기관의 명령에 의해 전쟁에 나갔던 일본군들과 시위현장에 나가는 한국의 전투경찰을 대치시켜,
그들 모두 영화 ‘두 개의 문’이 말한 것처럼 국익의 이름으로 희생당하는 불쌍한 존재들로 보고 있다.

 이 그림에서 박정희는 마녀가 되어 아직도 빗자루를 타고 다니고 있고,
전두환은 M16총을 밟고 자기가 부처인 양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실의 일이다.
역사는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가?
나는 반복에 방점을 찍고 싶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는 발전한다고 하였지만, 희생과 도전과 참여 없이는 언제든지 독재나 극한적 폭력의 망령이 득세를 할 수 있다.
홍성담은 이 그림을 통해 깨어있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홍성담은 아마 한국에서는 최초로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린 작가일 것이다.

 그는 ‘망루’라는 제목을 가진 설치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고,
이번에 소개하는 그림의 정중앙에 용산 남일당의 불타고 있는 망루를 배치함으로써, 용산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시민들의 생존권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무조건적 개발에 따르는 국가폭력의 결과로 보고 있다.

 이 그림은 현 시대에서 그림을 걸만한 곳을 찾지 못하여 2009년 인사동 평화공간에서 딱 한 번 전시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유신시대도 아니고, 5공시대도 아니지만, 오히려 우리 스스로의 자기검열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많이 쇠퇴했음을 느끼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를 기록한 걸작으로 대접받을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법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예술은 말할 수 있음으로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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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길현<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변길현님은 미술과 삶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늘 “시립미술관으로 놀러오세요”를 외치며 미술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 즐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즐거운 미술여행’전, `봄날은 간다’전, `Sweet hours’전 등 인상깊은 기획전들로
제1회 `올해의 젊은 큐레이터’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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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화 ‘두 개의 문’과 홍성담의 ‘간코구 야스쿠니’ - 변길현(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이름: damibox


등록일: 2012-07-11 11:58
조회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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