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06

['나무물고기' 118 - 바람이 자다]

바다 속까지 온통 뒤집어 놓은 바람은 사흘이 지나서야 멈추었다.
사흘 전에 터진 바람이 오늘 오후 무렵에 잤으니 꼭 이틀 밤 삼일 낮을 분 셈이다.
바람이 자고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선갑도 인근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이
이곳으로 바람을 피해 왔는지 구석구석은 물고기와 작은 미물들이 와글와글 거렸다.
몇몇 물고기들이 우리들의 모습이 신기한지 자꾸만 삐죽대며 가까이 다가와 쳐다보았다.

목어는 물속도시에서 탈출한 직후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성난 바다와 사투를 벌이며 이곳 선갑도 까지 헤어 오느라고 나도 성한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왼쪽어깨와 무릎에 생긴 근육통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바로 우리가 앉아있는 바위 앞에서 손톱만한 녀석이 고둥 껍데기를 등에 이고
자꾸만 해초를 뜯어서 등에 얹으며 우리에게 보란듯이 갖은 모양새를 냈다.
나는 청둥이의 눈치를 보면서 농담을 던졌다.

‘저눔 봐! 자꾸 등위에 해초를 꼽으면서 위장을 하잖아! 요즘 뭍에서 잘나가는 누구 같지?
위장전입,위장취업,위장설립,위장눈물,위장고백,위장회개,위장출생,위장경제,위장성장…
위장 덩어리로 똘똘 뭉친 누구 같잖아!‘

청둥이는 전혀 내말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지난 이틀 동안 그저 멍하게 앉아서
먼 물속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날개깃으로
눈 아래를 꾹꾹 눌러 찍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목어의 금간 곳을 어떻게든 수선해 보려고
선갑도 주변 바다 밑을 돌아다니면서 쓸 만한 것들을 찾아 뒤졌다.
큰바람이 불었던 뒤끝이라서 해안가 바다 밑엔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이
떠밀려 와서 마치 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그 중에서 새끼손가락 굵기의 삼끈을 한 다발 발견했다.
그리고 파도에 밀려 바위 사이에 쳐박혀 있던 난파선의 깨진 조각들 속에서
굵은 대못 십수개, 나무와 나무를 잇기 위해 붙여 놓은 한뼘 정도 되는 철판을 뜯어냈다.
배의 이물간에 창막이로 사용했을 것 같은 넓고 두터운 송판때기를 끌어내려고
요리조리 힘을 쓰고 있는 참에 누가 나의 엉덩이를 톡톡 때렸다.
청둥이었다. 그가 내 뒤를 따라 왔던 것이다.
그가 대못과 삼끈을 나의 손에서 받아 들었다.
나는 송판때기를 끌고 그와 함께 돌아왔다.

오후에 나는 목어의 몸통에 쩍 벌어진 틈을 수선했다.
우선 굵은 삼끈으로 목어의 몸을 묶어 조금씩 조였다.
갖은 힘을 써서 잡아당겨 조여 보았지만 틈은 완전하게 붙지 않았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까지 겨우 좁힌 상태에서 일단 대못을 군데군데 박았다.  
내가 목어의 몸에 대못을 때려 박을 때 마다  흠칫거리며 놀라는 청둥이의 표정은
여전했다.
청둥이가 바위 사이에서 우무가사리와 거머리말풀, 그리고 미역줄기를 뜯어와
돌로 찧어서 찐득한 풀을 만들었다. 남은 틈새를 그것으로 쑤셔 넣어 메꾸었다.

나는 난파선에서 뜯어온 철판 조각 끝을 바위에 어슷하게 갈아서 날을 세웠다.
그리고 목어의 나무 몸에 혀끝을 지그시 대어 느낀 감과
가져온 송판에 혀를 대어 그 느낌을 비교해 보았다.
상큼한 송진 냄새는 목어의 나무 몸이 조금 더 진했다.
내가 가져온 송판때기는 고깃배의 창막이로 사용했는지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흙냄새나 강도는 대략 서로 그 느낌이 비슷했다.

목어의 오른쪽 턱밑 지느러미의 크기를 손뼘으로 대충 재어 보았다.
그것에 맞추어 창막이 송판을 오려내고 깎기 시작했다. 오래된 소나무 목재라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철판으로 만든 칼날을 부드럽게 먹었다.
옹이 쪽에 칼이 들어 갈 땐 내 손목 힘이 부치자 청둥이가 말없이 도와주었다.
나무결을 따라서 지느러미의 결도 새겨 넣었다.
그런 나를 목어가 엎드린 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목어의 왼쪽 지느러미가 떨어져 나간 곳을 자세히 살펴가면서 그 홈에 맞게
새로 만드는 지느러미 끝을 다듬었다.
새로 깎은 지느러미를 몸통의 홈에 대어 보았더니 얼추 서로 잘 맞을 것 같았다.
주먹만한 자갈로 살살 두드려가며 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박아 놓은
못대가리에 삼끈을 걸어 단단하게 고정 했다.

밤이 되면서 바람이 완전하게 잤다.
오랜만에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게 빛났다.
바닷속에 들어앉은 밤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청둥이가
또 소리를 죽여 흐느꼈다.
이곳 해안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으로 목어가 입을 열었다.

‘청둥이가 슬픔을 잘 견디고 있구나.
세상의 모든 만남과 이별은 지척에 있다.
네가 걸어가야 할 길엔 앞으로도 새로운 만남과 이별이 수없이 놓여있다.
어떠한 이별이라도 모두 피를 토하는 아픔이 있단다‘

청둥이가 더욱 서럽게 흐느꼈다.

‘꽃지가 너무 불쌍해서요.....
저 깊은 물속에서 홀로 죽어갈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생각을 하면
제 억장이 무너져요. 으허헝.... 구멍난 등깍지를 끌고 다니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몸속에 상처가 곪고 있었어도, 집게발에 금이 갔어도
우리들에겐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그 고통을 견디어 낼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으허헝 엉엉‘

‘청둥아. 꽃지는 이제 가장 편안한 곳으로 올라갔을 거야.
그곳엔 상처도 없고...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고.... 외로움도.... 없는 곳이다.
이제 고통은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너무 서러워 마라‘

바닷속에 잠겨있는 초롱초롱한 별빛이 꽃지의 까만 눈을 닮았다.
청둥이는 또 소리를 죽여 울었다.
내가 오른손을 뻗어 청둥이를 감싸 안았다.
청둥이의 오른쪽 옆구리에 손가락 한 매듭 크기의 굳은살 돌기가 내 손바닥에
느껴졌다.
어렸을 때 오른쪽 날개가 뜯겨져나가고 남은 날개죽지 상뼈의 아문 굳은살이
내 손바닥에 닿아 그가 훌쩍일 때 마다 바르르 떨렸다.

고요한 바다 밑으로 별이 내려앉고 있다.
슬픔도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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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18 - 바람이 자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3:08
조회수: 2487 / 추천수: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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