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10
['나무물고기' 120 - 독갑이를 찾다]

저녁 어스름에 우리는 영흥도 업벌리 바다 밑에 도착했다.
업벌리 해안 바다 밑은 방파제와 굵은 쇠그물로 막혀 있었다.
이 쇠그물 너머에 날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를 태우며 전기를 만들어내는
화력발전소가 있었다. 전기는 인간들에게 영혼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물속 바위 너머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나풀거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찾던 독갑이가 손에 무엇을 들고 연신 입에서 작은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인기척을 하며 다가가자 독갑이가 입술에 붙어있는 작은 불꽃을 꿀꺽 삼키며
손에 든 것을 재빨리 등 뒤에 감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쏙 빼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게 누구야? 엉! 저 괴물은 해망산 작은 사찰 추녀 끝에 매달려 있던
목어가 아니던가? 캬! 아직까지 살아서 떠돌고 있다니 자네 명도 여간 질기군!
이젠 성한 구석이 한군데도 남아나지 않은 자네 신세가 내 신세나 서로
다를 바 없구먼! 우짜든 반갑네 반가워!
그런데 이 삐죽 마른 인간과 저 오리새끼는 왠 녀석들이여?‘
 
청둥이가 꽥꽥거리며 독갑이에게 댓거리를 하려고 앞으로 나가려하자
목어가 막아서며 독갑이의 등뒤로 시선을 던졌다.
 
‘그래, 기억해주니 고맙네. 그런데 천하의 심술쟁이 업벌리 독갑이가 여기 오두마니
앉아서 뭘 하고 있었나? 그리고 등 뒤에 뭘 감추고 있어?‘
 
독갑이가 몸을 틀면서 등 뒤로 돌린 손을 더 깊이 감추었다.
청둥이가 발빠르게 독갑이의 뒤를 돌아가서 손에 감춘 것을 보고 외쳤다.
 
‘이 독갑이가 불에 굽다가 만 전어새끼 한 마리를 자꾸 숨기고 있네 괙괙!’
 
독갑이는 창피한 듯이 등 뒤에 숨겼던 전어 한 마리를 바닥에 획 내던지고
머리를 긁적긁적 했다.
 
‘엥! 재수가 사납더니 오늘은 내가 별스런 창피를 다 당하는 구먼!’
 
‘호! 천하를 호령하던 그 불로 이젠 전어새끼나 겨우 구워먹고 있구나’
 
‘그렇네. 삼백년 만에 옥귀도 감옥에서 묶여진 쇠사슬을 풀고
고향 업벌리로 왔는데 나보다 몇 만배는 더 강한 놈이
내 안방을 차지한 채 떡 버티고 앉았네 그려‘
 
‘그래도 자네는 한때 이곳 쌍섬 앞바다 군자만 에서 유명짜한 불 뿜는 독갑이 아니던가?’
 
목어의 말에 독갑이는 더 이상 말도 말란 듯이 손사래를 저었다.
 
‘크흐! 말도 말게. 내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저 화력발전소란 놈을 보게!
저놈이 만드는 불에 비하면 내가 입에서 뿜는 불이란 세살짜리 아이들 장난이네.
나는 저놈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곳 바닷속으로 내쫓긴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
이젠 내 입에서 뿜어내는 불이란 겨우 이런 물고기나 잡아서 구워먹는 일 외엔
별로 할 일이 없어.
세월이 많이 변했어! 내가 한참 잘나가던 때는 사람들이 나에게 잘만 보이면
백자 길이 돌다리도 뚝딱 하룻밤 만에 놔주곤 했지.
그런데 요즘 인간들 다리 공사하는 것 보게.
나 같은 독갑이 수천명이 달라붙어서 할 일을 단 하루 만에 척척 해결하지 않는가.
영흥대교며 인천대교며, 송도대교며... 글구 태산보다 더 높게 건물을 짓는걸 봐.
이젠 이 독갑이가 세상사에 필요할 일이 없네.
요즘 나는 오히려 그런 인간이 무서워서 내가 먼저 슬슬 피해 다니네.
크흐흐. 이젠 독갑이가 인간을 무서워하는 세상이야!‘
 
목어가 그의 이야길 다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자네 말이 맞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꼭 자네의 손이 필요해서 찾아왔네’
 
목어의 말이 끝나자마자 독갑이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면서 엉덩이를 뒤로 뺐다.
 
‘엥이 나를 수상한 일에 끌어들이지 말게. 요즘 독한 인간들은
이 바다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어. 괜한 일에 말렸다간
이곳에서 마저 쫓겨나면 난 딱히 갈만한 곳도 없어’
 
내가 한발 앞으로 다가서며 은근슬쩍 겁을 주었다.
 
‘선재도 당산의 선인어부가 사고뭉치인 널 묶어두었지!
너를 삼백년 동안 묶어두었던 선인어부의 쇠사슬이 감추어진 곳을
하얀사람이 알려주어서 나는 알고 있어!
아무래도 내일 그 쇠사슬을 들고 널 다시 찾아와야 겠어!’
 
‘엥! 쇠사슬? 그게 바로 저기 소야바다에 있다구?
하이구! 내가 여지껏 저승사자 옆에서 살고 있었구먼.
괜히 그러지 말고 좋게 말로 해야징. 말로 협상하면 우리 안될 것이 없징‘
 
독갑이는 쇠사슬 이야기에 금방 꼬리를 내렸다.
목어가 심상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는 엊그제 백아도 앞 날개섬 우도 바다 밑에서 깃털말풀을 뜯어 왔네.
이 청둥이에게 어렸을 때 잃어버린 오른쪽 날개를 만들어 주어야 해.
이 일은 이 세상에서 독갑이 자네 외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뭐라구? 우도 바다 밑 깃털풀말? 그리구 날개를 만들어야 한다?
갸갸갸갸.....‘
 
독갑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서 제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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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20 - 독갑이를 찾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3:31
조회수: 1868 / 추천수: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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