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11
['나무물고기' 121 - 도면을 그리다]

독갑이가 눈을 가슴츠레 뜨고 청둥이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내 어릴적 아부지 독갑이께서 어린 청도요새 날개를 달아준 적이 있었어.
그 때 백상아리 한 놈이 백령도 앞바다에 죽어 떠올라 그의 턱뼈를 빼왔지.
한쪽 턱뼈로 날개죽지 상뼈를 삼아 청도요새의 날개를 만들어 주고
남은 한쪽은 숨겨두시면서 먼 훗날 날개깃이 하얗고 잘생긴 오리가
찾아 올 테니 그때 사용토록 하라고 말씀하셨어.
그런데 요놈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방정맞게 생긴 오리라니!‘
 
독갑이의 말에 청둥이가 눈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턱을 높이 들어올렸다.
눈을 크게 떠서 힘을 주는지 눈 언저리가 씰룩거리며 잘생긴 척 하느라 애를 썼다.
그런 모습을 보고 목어가 즉시 거들었다.
 
‘모든 수놈 청둥오리가 날개깃이 까맣지만 이 청둥이의 하얀 날개깃은 특별하지.
그리고 강한 노란 부리에 별처럼 반짝이는 저 총명한 눈을 봐라!
청녹색 목에 눈부시게 하얀 목도리깃이 서해바다에선 가장 잘 생긴 얼짱 오리다‘
 
청둥이는 더욱 눈을 크게 떠 보였다.
목을 길게 빼고 왼쪽 날개를 살짝 펴서 하얀 날개깃을 보여주었다.
 
‘호오! 정말 하얀 날개깃이로군. 요즘은 염색기술이 발달해서....’
 
독갑이가 수긍은 하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망설이자 목어가 급한 소리를 했다.
 
‘청둥이의 등에 묶어놓은 깃털말풀의 붉은 색이 허옇게 변해 버리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버린다. 저 붉은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 돼‘
 
나는 자갈을 하나 주워서 내가 생각해놓은 날개의 설계도면을
바닥에 쓱쓱 그려 보이면서 설명을 했다.
선갑도에서 이곳까지 헤어오는 동안 머릿속에 수십번도 더 그려봤던
청둥이의 새로운 오른쪽 날개 도면이었다.
 
‘이렇게 상뼈를 구부려서 우리가 가져온 깃털말풀을 촘촘히 붙이고.....
날개 끝과 청둥이의 다리를 강선으로 연결하여...
물론 요 끝에 작은 스프링이 들어가고... 구부려진 상뼈의 호 끝에
둥근 고리를 박아서 강선이 이렇게 끼어져...
청둥이가 날으려고 다리를 쭉 뒤로 빼면 발목에 고정된 강선이 잡아당겨 지면서
접혀졌던 날개가 자동으로 쫙 펴지고, 다시 다리를 원래대로 몸 아래로 굽히면
날개가 자동으로 접혀지고... 이렇게... 아니 바로 요렇게...
글구 여기 사용되는 부품들은 짠 물에도 녹슬지 않도록
모두 스테인레스 A급 정품으로...‘
 
청둥이가 고개를 쏙 빼어 신기하단 듯이 바닥에 쓱쓱 그려지는 도면을 바라보았다.
쪼그리고 앉아서 바닥의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며 내 설명을 듣고 있던 독갑이가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면서 갑자기 불쑥 일어섰다.
 
‘아이쿠! 머리야. 인간들이 하는 짓이란 이렇게 복잡해!
계획과 설계와 디자인과 계약서, 영수증, 시방서, 정면도, 평면도, 측면도 등등...
각종 도면들이 있어야 인간들은 일을 할 수 있지....크흐흐 내 머리가 깨질것 같아.
그런데 요 인간의 직업은 뭐야?‘
 
열심히 설명을 하다가 말고 내가 멀뚱한 눈으로 독갑이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요 도면에 뭐가 문제가 있나? 내 직업은 창고지기!’
 
‘캬! 다행이다. 넌 화가가 안된 것이 천만다행이야.
이런 별 볼일 없는 재주로 화가가 되겠다구 날뛰었다간 여러 사람 힘들게 할 뻔 했어!
피카손지, 피흘린 손지 그 엉터리 화가 한명 갖고도 온 인간들의 머릿속이 흔들거리는데...
이런 형편없는 재주로 화가되었다간 니들 세상이 또 한번 망쪼들 뻔 했어.
창고지기라구? 이 독갑이가 보기엔 아주 너에게 딱 맞는 직업이야‘
 
독갑이가 왼손바닥을 펴더니 손가락을 번갈아 가면서 고물고물하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믄! 아믄! 올 말께 너의 창고에 금송아지가 열 마리는 들어올 운세야!
창고바닥 깨끗이 닦고 금송아지나 받을 준비나 해 두라구. 엥! 아니? 아니다. 아니여!
그 다음날 바로 나가네! 바로 나가서 사방으로 흩어지네! 이게 모야?‘
 
독갑이가 말을 하는 동안 자꾸만 입가에서 작은 불꽃이 팔랑대며 나왔다.
내가 불안한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볼때 마다 그는 입가에 매달린 작은 불꽃을
후르륵 들여 마셨다.
 
'엥이! 인간들이 늙으면 자꾸만 침을 흘린다더니
나도 시도때도 없이 이렇게 불꽃을 흘린다구. 엥이 영판 성가시구먼!'
 
할 일을 두고 자꾸만 옆으로 새는 독갑이를 목어가 헛기침을 하며 바로 잡아주었다.
 
‘아믄아믄 그렇지! 내가 저 못생긴 오리녀석 날개를 만들어야지!
어디보자. 왼쪽 날개를 옆으로 길게 펼쳐봐라‘
 
청둥이가 날개를 쫙 펼쳐 보였다.
독갑이가 청둥이의 날개 끝을 잡고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감탄을 했다.
 
‘화! 너의 방정맞게 생긴 얼굴과는 다르게 하나뿐인 왼쪽 날개가 정말 튼튼하구나!
그리고 다행히 오른쪽 잃어버린 날개죽지의 상뼈가 옆구리에 한매듭 남아있어서
새 날개 붙이기엔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내 아부지 독갑이의 재주는 서해바다 건너 산동까지도 알아줬지.
내가 아부지의 재주를 따라갈 순 없지만 정말 오랜만에 이 독갑이의 진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벌써부터 내 가슴이 설렌다‘
 
잘난체 나대는 독갑이가 아무래도 못미더운지 청둥이가 물었다.
 
‘한번이라도 날개를 만들어 본 경험은 있었냐구?’
 
‘엥? 뭐.... 첨이지. 그렇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 울 아부지가 했던 걸 눈여겨 보아두었지’
 
‘뭐라구? 그러다 날개가 아니라 겨우 지느러미나 만들어 놓으면 이 일을 어째?’
 
‘캬! 염려 딱 내려놓으라구. 나는 한번 한다면 하는 놈이야!
날개가 되든 지느러미가 되든 그건 모두 너의 팔자소관이니... 일단! 함 해보자구.‘
 
작업을 앞두고 독갑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긴 손톱이 달린 손가락을 자신의 옆구리 속에 깊이 넣어서 뭔가를 찾아 꺼내어
바닥에 차례로 가지런하게 늘어놓았다.
돌판으로 만들어진 작은 잣대 같은 것 한 자루.
그리고 가는 뼈다귀처럼 생긴 큰 바늘 한 개와 작은 바늘 한 개.
나무에 감겨진 하얀 고래수염 한뭉치.
솜과자 처럼 생긴 해면 한다발.
이것이 독갑이가 자신의 옆구리에서 꺼낸 전부였다.
 
‘아니? 이런 허접한 도구로 날개를 만들어 청둥이 옆구리에 달 수 있단 말이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한 시선으로 독갑이와 목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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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21 - 도면을 그리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3:41
조회수: 2226 / 추천수: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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