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1
['나무물고기' 122 - 날개를 달다]

독갑이가 아까 앉았던 바위를 옆으로 치우고 나서 손을 바닥에 깊숙이 집어넣어
헤적이다가 검은 뻘이 잔뜩 묻은 백상아리 턱뼈를 꺼냈다.
뻘을 자신의 엉덩이에 쓱쓱 문질러 닦자 뼈의 하얀 색깔이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그리고 긴 손톱으로 청둥이의 등에 묶여진 주황색 나일론 끈을 자르고
깃털말풀을 받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이것을 구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생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는 말을
아부지 독갑이에게 들었다.
너희들이 대단한 일을 했구나. 아무나 구할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청둥이가 또 꽃지 생각이 났던지 울먹였다.
독갑이가 깃털말풀을 쥔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참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크게 들이키더니 입에서 불을 뿜었다.
불꽃에 닿은 깃털말풀이 펑 소리를 내며 집채만한 불이 붙었다.
청둥이가 놀라면서 독갑이의 손에서 깃털말풀을 뺏으려고 하자 목어와 내가 말렸다.
깃털에 붙은 불꽃이 처음엔 붉은 색이었다가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점점 사그라들면서 깃털말풀이 하얀 깃털로 변했다.
우리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에헴! 요즘 인간들이 줄기세포가 어쩌구저쩌구 지랄들 하지만
그건 모두 장삿속에서 나온 짓이 뻔해! 생명은 실험 삼아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지.
이 독갑이를 빼놓고는 지들끼리 완전한 생명을 절대 완성할 수 없지롱! 아믄아믄!
발뿌리에 채이는 돌멩이에도, 저기 가을바람에 말라가는 갈대이파리에도,
부스러져 떨어지는 담벽의 흙먼지에도 그 오묘한 신의 말씀이 있드라구.
그걸 듣지 못하구선 인간들의 이런저런 생명장사는 분명히 재앙을 가져 올거야. 끌끌
불쌍한 것들이 어찌 내 말을 알아 듣겠어. 그넘들은 그저 입속에 떠 먹여 줘도 싫다고 뒤돌아서더만...'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독갑이는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을 마구 지껄였다.
독갑이가 백상아리 상뼈를 바위에 눕혀놓고 그 위에 깃털을 조심스럽게 펼쳐놓았다.
그리고 깃털위에 돌로 만든 잣대를 세로로 세웠다.
그 앞에 뼈다귀 바늘과 고래수염 뭉치를 두었다.
그리고 뒤로 두어발 물러서서 입으로 뭔소리를 중얼거리더니 그곳을 향해 숨을 내쉬었다.
독갑이의 입에서 서리 같은 하얀 숨이 길게 나가 바위 위에 머무르자
먼저 잣대가 공중에 둥 떠서 뱅글뱅글 돌았다.
그리고 고래수염 한가닥이 바늘귀에 뀌어지더니 깃털위에 날아가
이리저리 헤집으며 꿰매기 시작했다.
상뼈에 깃털이 제자리를 찾아 순식간에 멋있는 날개가 완성되었다.
우리들이 환호성으로 추임새를 넣어주자 독갑이는 신이 났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누군가? 옛날엔 쌍섬 앞바다를 주름잡던 독갑이 아니던가!
자! 오리녀석은 서쪽을 보고 눈을 감아라. 옆구리가 조금 뜨겁더라도 잘 참아야 한다.
몸을 자꾸 틀면 날개가 거꾸로 붙게 된다‘
 
청둥이가 바위 옆에서 서너걸음 사이를 두고 뒤로 돌아 서편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독갑이가 솜과자 같은 해면을 공중에 던지면서 또 뭐라고 중얼거렸다.
공중에 뜬 해면이 날아가 청둥이의 오른쪽 날개 죽지의 남은 굳은살을
가볍게 문지르자 그곳에서 붉은 피가 두어방울 뚝 떨어졌다.
돌로 만든 잣대가 빙글 돌면서 그곳을 가리키니 바위 위에 있던 날개가 날아가
청둥이의 옆구리에 붙었다. 뒤이어 고래수염을 매단 작은 바늘이 날아가 그곳을 꿰맸다.
다시 크게 한숨을 들이키며 입술로 무슨 말을 중얼거리면서 휘파람을 불듯이
숨을 길게 토해냈다.
 
독갑이의 입에서 붉은 불꽃이 나풀대며 나가는 순간에 갑자기 그가 깜짝 놀라며
앞으로 튀어 나가 뻗어나가는 불꽃을 후르륵 들여 마셨다.
입으로 채 빨려 들어가지 못한 작은 불꽃 하나는 손으로 잡아서 다시 입속에 넣었다.
 
‘캬하~ 이게 아닌데...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느닷없이 왠 불꽃이야! 조금만 늦었어도
저 녀석과 날개를 몽땅 바비큐로 만들 뻔 했잖아!’
 
청둥이가 겁을 먹은 눈으로 우리를 돌아보며 엉덩이 꼬리깃을 덜덜 떨었다.
민망한 표정을 짓던 독갑이가 다시 입술만 딸싹거리며 뭔 소리를 외우다 말고
양쪽 손의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만들어 공중에 대고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며 이빨 사이로 쉬쉬 소리를 냈다.
우리는 가슴을 조이면서 그가 하는 짓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독갑이가 다시 숨을 들이쉬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술을 둥글게 쭉 내밀고
길게 내쉬었다.
 
독갑이의 입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 같은 것이 하얀 빛을 반짝이며
새로운 날개를 붙여놓은 청둥이의 옆구리를 휘감고 돌았다.
청둥이가 뜨거운지 눈을 질끈 감았지만 몸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고 잘 견디었다.
 
일을 마친 독갑이가 힘이 빠졌는지 비틀거리면서 옆으로 넘어질 것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독갑이가 나의 부축을 받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모두 마쳤다. 새로 붙인 날개를 내일 아침까지 움직이지 못하도록
잘 묶어 두어야 해! 아아! 이젠 나도 늙었어. 겨우 날개 하나 만들고 나서
이렇게 비칠대다니.... 세월 앞에 장사가 없어.
이 독갑이가 이런 멋진 재주를 피우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일 거야.
이젠 아무도 이런 재주를 원하지 않아! 만약 인간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나를 돌팔이쯤으로 매도하겠지. 그리고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해서
나는 또 쇠고랑을 찰지도 몰라.
아아! 아름다운 우리의 시대, 전설의 시대가 지나갔어‘
 
목어가 독갑이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동안 나는 청둥이의 새로운 날개를
그의 옆구리에 곱게 접어서 주황색 나일론 끈으로 단단하게 묶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청둥이는 정신이 반쯤 나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벌써 다 끝났다. 이 날개를 붙인 곳이 잘 아물기 위해선
내일 아침까지 잘 묶어두어야 해’
 
청둥이가 독갑이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감사 인사를 했다.
 
‘이제 너의 날개가 널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줄거다.
너는 하늘을 나는 모든 것들 중에 가장 강한 날개를 갖게 되었다.
태산의 붕새보다 더 높이 날고 백령도의 수지니 보다 더 빠르게 날 수 있다.
그러나 명심해라.
빠르다하여 남보다 항상 앞서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높다고 멀리 보는 것이 아니다.
에헴! 그리고.....향후 아프터서비스는 절대 엄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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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22 - 날개를 달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3:50
조회수: 2334 / 추천수: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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