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13
['나무물고기' 123 - 딱딱 소리]

‘벌써 가려구?’
 
우리가 떠나려 하자 독갑이가 못내 아쉬운 듯이 입을 쩍쩍 다셨다.
그도 혼자서 외로웠던 모양이다. 목어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말대로... 자네와 나는 너무 오래 살았는가 봐.
독갑이도 나도 열반에 들 때가 된거야.
우리는 언젠가 저 너머 새로운 세상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또 만나게 될거야‘
 
목어의 말에 건너편 물속 어둠을 더듬는 독갑이의 눈이 쓸쓸해 보였다.
그러나 금방 표정을 바꾸어서 낄낄대며 말하는 그의 눈엔 금방이라도
신나는 일을 꾸밀 듯이 장난기가 가득했다.
 
‘맞아! 이제 내 입에서 뿜는 불꽃도 조루증에 걸렸는지 예전 같지가 않아.
하믄하믄. 나도 조만간에 이 세상을 하직할 준비를 해야겠네.
우리 이담에 더 멋진 곳에서 만나 서해바다 용왕도 깜짝 놀랄 전설을 만들세.
모두들 잘가라구! 청둥이라고 했던가? 헛! 자세히 보니 동그란 눈이
아주 영특하게 생겼구나‘
 
‘칫! 독갑이 아저씨가 이제야 날 알아보시네.
내가 다음에 멋진 비행솜씨를 아저씨에게 꼭 보여줄께요‘
 
‘그래 그래. 응? 내가 이걸 깜빡 잊었다.
너의 새로운 날개깃은 한 깃 한 깃이 제각각 목숨을 갖고 있어서
단 한 개라도 소홀히 하지 마라.
한 깃을 어디에든 찔러 박으면 그 깃털 하나가 마치 나무처럼 자라서
또 하나의 날개가 된다.
바위에 박으면 돌에 날개가 자라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바위 덩이를 보게 될 것이고
나무에 박으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무를 보게 될 것이야.
내말을 믿든지 말든지..... 이크! 또 입에서 불꽃이 줄줄 새는군‘
 
독갑이가 말을 하는 중에 불꽃이 입 언저리에 너울대자 그가 후르륵 들이키면서
하던 말을 계속했다.
 
‘내가 꼭 진실을 말할 땐 이렇게 침이 튀듯이 불꽃이 너울댄단 말이야.
이 멋진 독갑이도 늙어가니 점점 추물이 되가는 구나.
이제 이 세상은 바로 청둥이같은 젊은이들의 것이야.
옛날에 우리들이 그랬듯이 조만간 이 세상은 자네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전설로 가득하게 될거야.
모두들 잘 가라구!‘
 
우리는 독갑이의 배웅을 받으며 십리길 북쪽에 있는 무의도로 향했다.
독갑이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불꽃을 길게 내 뿜어서 우리의 길머리를 밝혀주었다.
 
우리가 무의도 북단 진두곶 바다 밑에 도착했을 땐 깊은 밤중이었다.
목어가 쉴 자리를 잡아 무거운 몸을 내려놓았다.
물속에 들어온 맑은 밤하늘이 잔물결에 찰랑댔다.
청둥이가 내 곁에 앉으며 말했다.
 
‘글세. 저 독갑이가 날개를 제대로 붙였을까. 과연 새로 단 날개가
내 날개 노릇을 잘 할 수 있을까...‘
 
‘세상엔 믿지 못할 일들이 많다.
세상에 관해 우리들이 아는 것은 손톱만큼도 안되지.
난 안개도시에서 이십년도 넘게 살았지만 저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집과 창고 뿐이야.
내일 아침에 넌 분명히 양쪽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어‘
 
‘그런데 새로 붙인 날개죽지 어디에서 딱딱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게....날개를 붙여놓은 곳이 아물어가는 소리가 아닐까’
 
‘자세히 들어봐 딱딱 거리는 소리가 분명히 들리지?
소리 뒤 끝이 길게 울리는 것이 아름다워!‘
 
나는 끈으로 묶여진 그의 오른쪽 날개에 귀를 대본 척 했다.
 
‘아무런 소리도 안들리는데.... 네가 아직 새로운 날개에 익숙하지 않아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처럼 느끼는가 봐‘
 
‘아니야... 어어? 방금도 들렸어. 날개죽지가 조금 들썩일 정도로 소리가 들리잖아!’
 
‘아까 날개를 붙일 때 너무 긴장했던 몸이 이제 풀리느라고...’
 
‘또! 방금 날개죽지 안에서 소리가 들렸어!
마치 꽃지가 집게발을 마주치는 소리 같아.
혹시 꽃지가 내는 소리가 이 깃털 속에 스며든 것이 아닐까?‘
 
물속에 잠긴 밤하늘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목어가 말했다.
 
‘그래 꽃지가 깃털말풀에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었을 거야.
그 새로운 날개는 꽃지의 혼이 깃들어 있으니....‘
 
물속에 든 별을 바라보는 청둥이의 눈에 하얀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나는 옆으로 누워서 청둥이를 껴안았다.
그의 새로운 오른쪽 날개를 묶어둔 주황색 나일론 끈이 손에 닿았다.
그가 흐느끼는지 날개죽지가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금방 푸르르 푸르르 코를 골았다.
 
물속에 든 밤하늘에서 별 하나가 떨어졌다.
파르스름한 불꽃이 너울대며 바닥에 떨어진 별을 감싸고 있다.
별 속에 누워 있던 누군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청둥이를 껴안고 돌아 누워있는 나는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로만 판단할 뿐이다.
긴 치맛자락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바로 내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멈추었다.
그녀가 우리들의 잠을 들여다보고 있다.
활처럼 생긴 붉은 입술로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희는 지금 어디에 있냐고 조용히 묻고 있다.
 
내 팔에 턱을 괴고 핑핑 코를 골던 청둥이가 활짝 웃었다.
꿈속에서 꽃지가 집게발을 딱딱 마주치며 청둥이를 불렀던가 보다.
초가을 밤의 찬 공기가 물속에 들어왔다.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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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23 - 딱딱 소리]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4:20
조회수: 1855 / 추천수: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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