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17
['나무물고기' 126 - 떠나다]

새벽 일찍 일어난 나는 그 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아침을 맞았다.
물속의 아침은 조용히 찾아든다.
새들이 날개깃을 다듬는 소리도 없고 풀잎에 맺힌 이슬을 터는 바람소리도 없이
물속의 아침은 고요하다.
다만 수평선에서 올라오는 해가 긴 화살을 쏘듯이 가느다란 햇살이 바닷물 위를
스치듯이 비껴 들어오면 물속은 빛의 잔치가 난무한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빛의 산란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광경은 비현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보는 눈의 감정에 따라 속도와 시간이 달라진다.
그것은 느린동작 화면처럼 천천히 보여 지기도 하고, 빠르게 되돌림 화면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정지된 채 망막에 한참이나 고정되기도 했다.
 
어제 밤 잠들기 전엔 내 품안에 누웠던 청둥이가 아침엔 목어의 지느러미에
턱을 괴고 잠을 자고 있었다.
목어가 자신의 턱밑에서 잠들어 있는 청둥이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청둥아.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하자!’
 
늦잠을 곤하게 자던 청둥이가 목어의 떠나자는 말에 깜짝 놀라 일어나
괙괙거리며 부산을 떨었다.
 
‘하아! 드디어 오늘 우리가 소야바다로 돌아가는구나. 괙괙 한시라도 빨랑 가자구!’
 
‘아니야. 오늘 청둥이가 하늘을 날아 너의 길로 가는 날이다’
 
청둥이가 눈을 비비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목어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렇지.... 내가 벌써 떠나야 돼? 그런데... 내가 꼭 오늘 떠나야 하는거야?’
 
‘그래. 아침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야 한다.
모두 내 등에 올라앉아라!‘
 
청둥이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금방 표정이 밝아지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요 인간... 열불아! 눈을 감고 뒤로 돌아서 팔을 양쪽으로 길게 펴봐.
내가 선물을 줄 것이 있어.... 아니 내가 너에게 잠시 맡겨 놓을 것이 있다구.
조금 따끔하더라도 참아야 해....인간들이란 워낙 참을성이 없어서...‘
 
나는 웃으며 뒤로 돌아 양팔을 벌리고 눈을 감았다.
청둥이가 목을 돌려 부리로 자신의 오른쪽 날개에서 깃털 두 개를 뽑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내 등 뒤로 다가와 날개로 내 엉덩이를 두어번 때린척하더니
갑자기 내 양쪽 겨드랑이에 주사바늘을 꼽듯이 깃털을 쑥 박았다.
나는 깜짝 놀라며 뒤로 돌아섰다.
 
‘이크 따가워! 뭐야! 뭔짓을 한거야?’
 
‘아무래도 내 몸의 좌우 균형을 맞추려면 노란 발찌 대신에 오른쪽 날개깃털
두 개를 빼내야겠지. 이걸 목어아저씨 몸에 박아두었다간 뒷날 저 우람한 몸이
날개를 휘저으며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아마 세상이 감당하기 힘들게 될거야.
그래서 너에게 잠시 맡겨 놓는다구.
꽃지와 청둥이가 너에게 주는 우정의 표시로 생각하고 잘 간수하라구!‘
 
그런 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떠나기를 주저하는 청둥이를 내가 품에 안고
목어의 등에 올라앉았다. 그도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내 품에 안겨 날개 죽지를 떨면서 말없이 흐느꼈다.
목어가 꼬리지느러미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무의도 바다 밑을 돌아
영종도와 송도 신도시 사이의 바다위로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물속을 벗어나 하늘 아래로 나간 것이다.
그러나 물속이나 물 밖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내 품에 안겨있는 청둥이의 작은 몸이 몹시 떨렸다.
그런 청둥이를 목어가 모른 채 하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자! 어제 물속에서 연습한대로 하면 된다.
날개를 반쯤 펴서 너의 강한 물갈퀴 발로 이 바다 위를 스치듯이 힘껏 달리다가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끼면 날개로 수면을 때리듯이 힘껏 저어라!’
 
청둥이가 목을 힘껏 움츠려서 출발하려다 말고 울먹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난....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지?’
 
‘염려마라! 하늘 높이 오르면 너의 몸에 본디 들어있는 지도가 밝아질 것이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부는 바람이 네가 가야할 곳을 가르쳐 줄 것이야‘
 
이때 바다 건너편 방조제를 따라 아침조깅을 하는 누군가가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조깅을 하다말고 물위에 뜬 우리를 향해 입을 떡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언제...어디서 또 만나게 되지?
우린 소야바다에서 다시 꼭 만나는 거지?’
 
그렇게 물어보는 청둥이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눈에서 맑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래. 저 방조제 너머엔 우리들이 여태 살았던 소야바다가 있고
이 물 아래도 똑 같은 소야바다가 있고, 하늘 위에도 소야바다가 있다.
우리는 이 소야바다에서 다른 무엇이 되어 다시 꼭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청둥이가 날아갈 시간이 되었다. 날아올라라!‘
 
청둥이가 날개깃으로 눈물을 훔치고 목어의 이마를 한번 쓰다듬은 후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까만 눈에선
다시 맑은 눈물 한줄기가 흘러 내렸다. 그의 턱이 가늘게 떨었다.
그가 발목에 잔뜩 힘을 주더니 목어의 등에서 뛰어내려 바다 위를 빠른 속도로
달려가다가 목을 앞으로 길게 내밀고 다리를 뒤로 빼면서 날개를 힘껏 저었다.
청둥이의 몸이 가볍게 하늘위로 솟아올랐다.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크게 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어 우리의 머리 위에서 천천히 선회했다.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청둥아! 잘가라구!’
 
청둥이도 뭐라고 외쳤지만 영종도 공항에서 이륙 하는 비행기 소리 때문에
서로 들리지 않았다. 목어가 숨을 길게 내쉬며 몸을 천천히 물속으로 잠겼다.
스쳐지나가는 바닷물이 목어와 내가 몰래 흘렸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리는 청둥이를 떠나보내고 이렇게 다시 물속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물속으로 사라지자 방조제에서 조깅을 하던 사람은 되돌아서서
미친 듯이 악을 고래고래 질러대며 자기 집을 향해 뛰어갔다.
현관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말을 쏟았다.
 
‘난 봤어! 집채 만한 몸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큰 고래 등에...
벌거벗은 사람이 올라앉아서...그리고 하얀 날개 짐승이 날아가드라구! 난 봤어!
그리고 남은 그들은 물속으로 그냥 쑥 들어가드라구!‘
 
그의 아내가 아침 밥상을 차리다 말고 숨을 헐떡이는 그를 보며 힐난을 했다.
 
‘이 양반이 어젯밤 오랜만에 남편구실을 좀 했기로서니 아침부터 헛것을 보구 난리야!
빨리 밥 먹고 출근이나 하세욧! 방독면 챙기는 것 잊지 말구‘
 
밥상에 마주 앉은 고교생쯤 되어 보이는 딸에게
그가 얼음 밥알을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이 아빠는 분명히 봤다구!’
 
딸이 아빠의 얼굴을 짠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았다.
 
‘아빠가 확실히 요즘 좀 이상해졌어!’
 
그는 출근길 전철 안에서 회사 동료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난 오늘 봤어. 진실이당!>
 
잠시후에 핸드폰 전자음이 ‘띠옹’ 울리며 답신메시지가 왔다.
 
<진실을 봤으면 %&*#@$ 징역감!>


-추천하기     -목록보기  
제목: ['나무물고기' 126 - 떠나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4:47
조회수: 2402 / 추천수: 486


day_090217_1.jpg (306.5 KB)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