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17
['나무물고기' 127 - 빈자리]

우리는 바로 뒤편에 있는 팔미도 바다 밑으로 내려갔다.
낮은 산꼭대기에 있는 등대의 하얀 그림자가 이곳 바다 밑까지 드리워졌다.
나는 갑자기 배고프고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어도 움츠리고 있었다.
거대하고 육중한 목어의 몸이 왜소하게 느껴졌다.
나도 목어도 아무 말이 없이 몸을 떨면서 물속의 아침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둥이의 빈자리가 허전했다.
 
목어의 몸통 금간 곳에 박아두었던 못들 중 몇 개가 헐거워져 어느 틈에 빠졌는지
못구멍만 보였다.
나는 그의 몸을 다시 수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못이 빠져나간
빈 못구멍의 숫자를 셌다.
그러나 목어가 이제는 더 이상 수선할 필요가 없다고 눈짓으로 말했다.
우리는 물속에 들어온 아침 햇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목어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너도 소야바다를 지나 안개도시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이 들물에 마산수로를 통과해야 한다!’
 
나는 말없이 목어의 뒤를 따라 헤어가기 시작했다.
대부도와 선재도 바다 밑을 돌아서 마산수로를 향했다.
마산수로의 병마개 구실을 하는 누에섬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탄도 앞 물막이 방조제 공사가 그 새 완성되어 마산수로가 막혀버렸던 것이다.
이제 소야바다는 서해바다로부터 완벽하게 단절이 되어버린 셈이다.
어쩌면 오히려 잘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솔직히 아직 안개도시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목어가 그런 나의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말했다.
 
‘넌 돌아 가야해! 밤중에 홀로 방조제를 넘어서 안개도시로 되돌아가면 돼!’
 
‘마산수로를 통해서 서해바다에 나왔으니 나는 기어코 마산수로가 아니면 돌아가지 않을테야!’
 
‘큭! 그건 안개도시의 정치꾼들이나 하는 말투야!’
 
‘글쎄! 난 걸어서 방조제를 넘는다 치고, 목어 넌 어떻게 할 건데?’
 
‘난.... 가야 할 곳이 있어. 이번에 날개섬 우도를 오고가면서 봐 둔 곳이 있지’
 
‘나도 그곳에 따라 갈거야’
 
‘그 길은..... 다시...돌아오지 못할 곳이야’
 
나는 목어의 이 말이 무슨 뜻을 의미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어깃장을 놓고 싶었다.
 
‘나는 안개도시로 돌아가지 않을거야.
나도 오고가면서 봐둔 곳이 있지. 나도 그곳으로 갈거야‘
 
사실 나는 다시 안개도시로 돌아가야 했다.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또 창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이곳에 더 있고 싶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과 내가 꼭 돌아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대한 반항이었다.
목어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엔 힘이 없었다.
어디에서 금방이라도 청둥이가 괙괙 거리며 나타나 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다시 누에섬 바다 밑에 엎드려서 하염없이 물속을 쳐다보았다.
물속을 떠다니고, 헤어 다니고, 기어 다니는 온갖 작은 미물들을 바라보았다.
내 한 몸이 저 미물들과 하등에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유독 상심하며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만큼은 특별한 존재일 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었다.
우리는 서쪽하늘에 초저녁별이 뜰 때 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제자리에 움츠리고 있었다.
 
한 밤중이 훨씬 지나도 서로 말이 없었다. 그냥 말없이 이렇게 있는 것이 편안했다.
청둥이는 어디쯤에 내려앉아 잠을 청하고 있을까.
그는 홀로 그 작은 몸을 떨면서 외로움에 흐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지금쯤 그는 코를 푸르르 푸르르 골면서 깊은 잠에 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그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입술을 그의 부리처럼 내밀고
‘괙괙’소리를 내보았다. 목어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나도 목어를 바라보며 웃었다.
 
가을 새벽의 한기가 물속에 들어와 등줄기가 서늘했다.
목어가 잔뜩 몸을 움츠리는 나를 보며 귀를 기울여보라고 눈짓으로 말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저 어둠 끝에서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한줄기의 소리가 들렸다.
맑은 방울소리처럼 울리다가 사라졌다.
다시 찰랑대는 물결에 맞추어 새벽별이 파르르 떠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겨우 들릴 수 있을 정도로 가늘지만 새벽빛처럼 투명하고 명징했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들리는 소리가 점점 더 명확하게 귀에 들어왔다.
목어가 말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가보고 싶지?’
 
나는 윗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뒤쪽에서 나는 소리 같다가도 앞쪽인 것 같고
멀리에서 들리는 것 같다가도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목어가 그 소리를 찾아 먼저 앞으로 나섰다.
나도 귀에 모든 신경을 모으며 목어의 옆에 바짝 붙어서 헤어가기 시작했다.
 
동쪽 바다 밑에서 새벽 미명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 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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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27 - 빈자리]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4:54
조회수: 2451 / 추천수: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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