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종이에 먹과 수채/08.03.04
['나무물고기' 11 - 함께 가다]

우리는 물속도시의 외곽도로를 따라 함께 헤어갔다.
세 번째 교차로 앞에서 괴물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눈짓을 했다.
나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괴물과 나란히 큰길로 다시 들어섰다.
오른쪽엔 주거 단지 인듯 작은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어린이 놀이터엔 그네 한 쌍이 미동도 하지 않다가 우리들의 시선을 받고 약간 흔들어 보였다.
양쪽에 기린과 코끼리가 조각된 시이소가 잠깐 끄덕거리며 움직일 듯 하다가 그만 두었다.
놀이터 입구 쪽에 쓰레기통이 옆으로 기울인 채 입을 벌리고 있다.
쓰레기통이 토해 냈는지 혹은 아이들이 흘렸는지 과자 껍데기 몇 개와 부숴진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었다.

저쪽 아파트 벽 뒤에서 끼리릭 소리가 들렸다.
벽속에서 세발자전거가 혼자서 조금 굴러오다가 멈춰 섰다. 여기 물속에도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우리가 큰길 쪽으로 시선을 돌려 헤어가려고 할 때 뒤에서 다시 작은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끼리릭 끼릭' 들렸다.
내가 고개를 돌려 돌아보자 세발자전거가 조용히 멈추어 섰다.
아파트 벽 뒤에서 어떤 바람 한줄기가 자전거를 밀었던 모양이다.
아무도 없다. 이곳엔 아무도 살지 않는다.
내가 괴물에게 물었다.

‘여기 누가 살아?’

‘아무도 살았던 적이 없어’

‘그러면.... 왜 집을 지었지?’

‘땅위 사람들은 꼭 그곳에 살기 위해서 집을 짓던가?’

괴물은 움직일 때 마다 몸에서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나무로 만들어진 육중한 몸은 오랜 세월에 여러 곳이 헐거워져 있었다.
길이 맞닿는 곳, 누군가가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위에서 또 머뭇거렸다.
땅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점점 바다 속 깊이 밀려들어 왔다.
이 온갖 욕망의 잔해들만 남겨둔 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한 때 사랑으로 빛나던 얼굴도 오려내서 버리고
이곳 시화바다가 막히던 날 두려움에 떨었던 눈도 빼서 던져버리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던 저 아름다운 입술도 뜯어내서 버리고
막힌 소야바다가 썩어갈 때 분노의 구호를 외치던 붉은 혀도 뽑아 던져버리고
그이의 가슴을 쓰다듬던 저 하얀 손도 잘라서 내던져 버리고
소야바다에 둥 떠있던 저 섬이 육지가 되어버릴 때 절망의 몸짓을 하던
저 가냘픈 주먹도 떼 놓고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다.
물고기를 닮은 괴물 木魚가 큰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삐이걱 소리가 났다.

'땅위의 사람들이 마음껏 버린 욕망과 쓰레기들 때문에 이곳 물은 분노했지.
그 분노가 땅위의 도시를 베끼듯이 이곳에 물속도시를 만들게 했어.
그러나 물은 실패했어. 물의 분노가 사람들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했지.
물은 이곳을 그대로 버려두고  좀 더 넓고 깊은 곳으로 옮겨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있지.
실패한 자의 분노는 더욱 더 단단하게 뭉치기 마련이지. 물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전설을 만들고 있을 거야.
폐허로 변한 여기 도시는 분노마저 사라져 버려서 허무한 곳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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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1 - 함께 가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8 16:08
조회수: 2033 / 추천수: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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