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종이에 먹과 수채/08.03.07
['나무물고기' 13 - 그들을 보다]

바로 이곳에 그런 아름다운 세월이 있었다니 나는 믿기지 않았다.
역겨운 냄새 때문에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의 눈빛은 오래전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이 재구성되어 만들어진 거짓 기억들이 있다.
그래서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된다. 나는 숫자로 채워지지 않는 기억은 신뢰하지 않았다.
그가 아련한 눈빛을 거두며 말했다.

‘내 몸이 이 썩은 바다에서 짓물러 삭아가고 있어도 지난 세월의 아름다운 기억만으로도
나는 살아있는 동안 내내 행복할 수 있어’

나는 그럴 수 있는 괴물 木魚가 부럽기도 했다. 그의 큰 눈망울이 왠지 천진하게 보였다.
함께 헤어가면서 괴물의 몸짓을 자세히 보니 삭은 나무결에 처연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비늘과 비늘사이에 오랜 세월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무늬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의 나무 몸을 깎아 다듬은 어떤 손의 각별한 정성이 세월의 더께 아래 숨을 쉬고 있었다.
내게도 이 木魚처럼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었던가. 나는 고개를 완강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라지는 것은 세상에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아.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떠난 것 뿐이야‘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갑자기 반짝이며 언뜻 장난기가 깃들었다.

‘이렇게 썩어버린 곳이지만 이 물속엔 아직까지도 전설이 말라버리진 않았어.
내가 오랜만에 요술을 하나 부려볼까. 큭큭
그들이 빼 던지고 간 저 눈알을 내 눈에 넣으면
눈알의 주인인 그들의 지금 모습을 볼 수 있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죽음조차도 홀로 단절되어 있지 않고 삶과 연결되어 있거든.
물론 전설이지. 물속에선 때때로 실제 현실이 전설처럼 보이기도 하지‘

木魚가 목밑 지느러미를 둔하게 움직여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눈알 하나를 주워서
자신의 눈에 밀어 넣었다.
눈알이 목어의 눈 안에 들어가 제자리를 잡으려고 씰룩거리자
금방 木魚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떠났어 이곳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나갔어
배를 부리던 그들은 이제 쇠덩이로 만든 차를 달리고 있어 너무 빨라
그리고 땅을 사랑스럽게 쓰다듬던 저 손이 산허리를 무너뜨리고 있어
더욱 빨리 달리기 위해 저 언덕과 산을 다리미질 하듯이 밀고 있어

그들은 바다의 흰 파도 대신에 쇠덩이와 검은 연기를 더 사랑하고 있어
이문이 남는 곳이면 어디든 재빨리 달려가야 해
아 아 그 이문과 끈적끈적한 욕망을 서로 바꿈질하고 있어
그들의 욕망이 펄펄 끓어 넘칠 때 마다 아무 곳에나 쏟아버린 느끼한 것들이
모두 이곳 소야바다로 흘러와 쌓여 썩고 있어 그 끝이 보이질 않아

이곳 소야바다가 저 너른 서해바다와 단절되어 소야호로 변해버린 날에 분노의 눈물을 떨구던 그가
오늘은 오만분의 일 지도에 빨간 줄을 그으며 유쾌한 웃음을 날리고 있어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새로운 도시를 그가 그은 빨간 줄 네모 칸 안에 넣기 위해
소야바다를 메우고 간석지를 돋우며 신바람이 났어

그들은 밤마다 분홍불빛 아래서 이문을 계산하고 있어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이문이
그리고 내일의 보다 많은 이문을 위해 오늘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어‘

木魚는 그들이 버리고 간 눈알을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느끼한 표정으로 새로운 이문을 향해 웃음을 질질 흘리는그들의 모습에 木魚는 속이 메슥거렸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이문이 남아야 한다며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얼굴이 보였다.

木魚는 그들을 보았다.
땀방울이 묻어있지 않는 이문을 쫓아 목숨 까지도 저당 잡힌
위태로운 모습을 그는 보고 있었다.

木魚의 눈에 그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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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3 - 그들을 보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8 16:19
조회수: 1836 / 추천수: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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