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3.22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2.17

['나무물고기' 16 - 소리를 듣다]

밝다.
하얀 꽃송이가 만드는 희미한 빛이 어둠을 등 뒤로 밀어냈다.
이 물속 어둠 속에서도 이렇게 꽃을 피우다니 너무 반가웠다.
기쁘다.

木魚가 기쁨을 숨기고 있는 나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이 하얀 꽃이 내는 소리를 들어봐’

하얀 꽃 위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를 들어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은 소리가 난다하더라도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소리는 언어 이전의 것이야. 잘 들어봐’

갓난아이가 곤하게 자고 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둠 저 뒤편에서 누군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소리 같기도....
내 맥박의 잔향이 이 꽃잎에 얹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얀 꽃 얇은 이파리가 파르르 떨었다.

그래, 꽃송이가 내는 이 빛은 저 어둠 보다 더 캄캄한
도저히 아무것도 존재 할 수 없는 어둠이야.
빛과 아무런 색깔이 없는 것은 서로 분간하기가 어렵지.
어둠조차도 하나의 빛깔이거나 색깔이거든.
이 꽃이 내는 빛은 빛이 아니야.
어둠 보다 더 깊은 어둠, 어둠의 끝이야.
어둠의 색깔조차도 잃어버린 빛깔이야.
어두움의 맨 끝자락과 절망의 저 깊은 마지막 바닥은 아무것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아.
그렇게 텅 비어 있는 곳을 만나게 되면
너도 나도 얼굴도 이름도 가슴도 생각도 사랑도 시간도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아.
이 나무의 뿌리 끄트머리 하나가 바로 그 텅 비어 있는 곳에 닿아있군.

목어의 까만 눈에 허무감이 가득 찼다.
절망과 어둠이 가득한 물속에서 하얀 꽃을 달고 있는 이 나무는
어쩌면 전혀 무의미한 것에 열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의미한 하얀 꽃을 별 이유 없이 들어 보임으로써,
의미나 목적을 가지고 뭔가에 열중하는 타인을 얕보면서
자신은 마치 초월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귀를 기울여 들었다.
절망조차도 사라져 버린 절망의 소리를 들었다.
어둠조차도 사라져 버린 어둠의 소리를 들었다.
소리조차도 사라져 버린 텅 비어있는 곳에 귀를 바짝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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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6 - 소리를 듣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8 16:29
조회수: 1756 / 추천수: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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