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2.22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4.02
['나무물고기' 17 - 소리가 들리다]

어둠 끝에서 무슨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하얀 꽃이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어딘가 고장난 듯한 자동차 엔진소리, 또는
체인이 벗겨진 자전거 패달이 헛도는 소리 같기도 했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골골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는 많은 것들을 먹어치웠다.  밥처럼!
산을 먹기도 하고 강을 먹기도 하고 바다를 마시기도 하고
밤하늘 영롱한 별빛을 아드득 깨물어 먹고, 허연 달을 베어 먹기도 하고
나무와 흙을 먹기도 하고, 밥처럼....
그래... 맛있게, 또는 맛이 없어도 맛이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보이지 않는 모든 것 까지
모조리 나의 먹거리가 되었다.
잔뜩 포식한 나는 배가 터질 것 같아서 숨쉬기도 힘들어.  
세상의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하구나. 눈뜨기도 싫어.
그래서 오늘 나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이곳에 하릴없이 누워서
색깔 없는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 나는 더없이 행복하지.

골골거리는 소리에 의아해하는 나에게 하얀꽃이 다시 말했다.

내 소리를 아직도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군.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곳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은 서로 달라.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내가 모두 먹어치워 버렸거든. 없어! 아무것도.
아니... 있어! 내가... 내가 하릴없이 피워 올린 멀건 하얀 꽃들이 있어.
내가 있어! 나는.... 행복하지. 더없이 행복하다구.

하얀 꽃은 입버릇처럼 행복하다고 되뇌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이 설사 이 어두운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하는
존재이유라 하더라도, 무의미하게 피어올린 하얀 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것은 파탄난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가 먹어치운 세상의 모든 것들 중 큰 강 하나가 어둠 뒤편 아득한 곳에서
문득 뒤척이다가 사라졌다.
바다 속 멀리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긴 도시가 쉼 없이 자라는 소리에
그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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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7 - 소리가 들리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8 16:33
조회수: 1831 / 추천수: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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