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1.18

['나무물고기' 107 - 육도를 지나다]

서해바다는 모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어머니의 태반과 같았다.
감추어진 듯이 없는 듯이, 그러나 바다에 담겨진 모든 것들이 활발하게 숨을 쉬며 살아 있었다.
바다가 먼저 숨을 쉬고, 바다에 담긴 모든 것들이 바다를 따라 숨을 쉰다.
우리는 오랜만에 어머니의 품에 안겨 그녀가 가르쳐주는 대로 숨을 쉬었다.
서해바다의 썰물은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더욱 파란빛 바다로
편안한 길을 함께 했다.

작은 고기떼들의 모습이 자꾸만 바뀌어졌다.
물고기 한 무더기가 우리를 따라오다가 그만두면 또 다른 물고기 떼들이
우리들의 근처를 배회하면서 한동안 따라왔다.
작은 물고기들은 서로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우리의 곁을 종일 떠나지 않았다.
완만하게 펼쳐지는 바닥위에 작은 방석만한 크기의 노란 간재미가
바닥의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우리의 출현을 반겼다.
간재미의 양쪽 넓은 지느러미가 형광색을 발하면서 작은 물결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한동안 우리를 따라오다가 힘이 부쳤는지 멈추어 서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지느러미로
잘 다녀오라고 손짓을 했다.

물속바닥의 풍경도 자꾸만 변했다. 해초들이 끝나는 곳에서 바닥의 경사가 급하게
밑으로 꺾이며 바닷물의 촉감도 약간 서늘하게 변했다.
물색깔도 훨씬 더 투명해졌다.
이젠 우리들의 몸놀림은 그냥 자연스럽게 물결에 맡겨놓은 상태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왔던 거리만큼만 더 헤어가면
여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육도가 먼저 보일거야.
그리고 그 뒤쪽에 바다거북을 닮은 풍도가 바다위를 헤엄쳐 가듯이 떠 있지‘

청둥이가 목어의 말을 받아서 대뜸 말했다.

‘사람들은 너무 숫자에 민감하단 말이야.
이놈의 숫자라는 것은 생각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다구.
여섯 개의 섬이라서 육도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나는 오월에 태어났으니 오남이라 부르겠지?
엥! 너무 촌스러워! 괙괙괙‘

그리고 나를 힐끔 뒤돌아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 인간은 빼죽한 손가락이 열 개니까 열손이겠다.
맞어! 너의 이름은 열손이야. 열손!
아니다! 세상 만물들이 인간만 보면 열불이 터지니까
너의 이름은 열불이라구!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열불이야‘

‘넌 오월에 태어났으니 오남이 보다는 오리가 맞네!’

‘괙괙! 우리 오마니가 나를 낳을 때 절기와 날짜를 다 맞추어서
낳으셨는가봐! 그래, 나는 오월에 태어났으니 오리가 딱 맞네!‘

청둥이는 헤엄을 치면서 자꾸만 꽃지의 시선을 의식했다.
꽃지와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의 목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목에 둘러있는 하얀띠가 깔끔한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가 목을 아래로 향해 허리를 굽히더니 멋지게 한바퀴를 물속에서 구르는 재주를 보였다.
그리고 나서 도톰한 엉덩이를 두어번 털며 꽃지를 힐끔 쳐다보았다.
청둥이의 몸짓을 유심히 보던 꽃지는 그럴 때 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관심 밖인 척 했다.

‘보여요! 하나 둘 셋... 여섯개! 육도가 희미하게 보여요.
아! 수면에 나란히 줄지어 비치는 육도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목어의 등위에 앉아있던 꽃지가 집게발을 딱딱 마주치며 외쳤다.
물이 맑고 투명한 까닭인지 꽃지의 목소리도 쏘는 듯한 고음이 투명한 울림에
곱게 감싸여 있었다. 어두운 시화바다에선 느끼지 못했던 고운 음색이다.
투명한 울림은 그녀의 등을 덮고 있는 단단한 등깍지가 가볍게 공명하는 소리였다.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 도착한다는 설레임 때문에 더욱 빨리 몸을 움직였다.
육도가 어렴풋이 보이면서  물의 저항이 조금씩 무겁게 느껴지며
헤어가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목어가 말했다.

‘벌써 썰물때가 끝나고 밀물이 드는가보다.
이럴 땐 진득하게 몸을 움직여 천천히 헤어가는 것이 편하지.
물을 거슬러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다.
풍도에 도착하면 어차피 오늘 남은 하루는 그곳에서 쉬어야 한다‘

우리는 여섯 개의 섬중에 가장 오른쪽에 있는 종육도와 말육도 사이를 통과했다.
여섯 개 중에 하나의 섬에서 누런 토사가 바다로 밀려 그 쪽 바다밑은
온통 누런 흙이 쌓여있었다. 섬 하나가 거의 절반 정도 깎여져 나갔다.
땅을 파헤치는 포크레인과 중장비 소리가 조용한 섬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골재를 싣는 벌크선의 시커먼 그림자가 여러 척 보였다.
저곳에서 파낸 골재는 육지로 실려가 다시 바다를 막는 물막이 공사에 퍼붓게 될 것이다.
청둥이가 나에게 핀잔을 주듯이 말했다.

‘인간들의 오두방정 땜에 여기 육도는 곧 오도가 되겠구먼!
섬 하나가 거의 작살이 났어!
그래서 숫자는 별의미가 없다구‘

‘그래, 우리 인간들이 하는 짓이 모두 그렇지!’

‘괙괙괙. 처음으로 시인을 하는구먼, 그런데 넌 인간이 아니냐?
이왕지사... 너도 이참에 인간과 인연을 끊고 우리 오리족속으로 들어오라구!
그동안 마운정 고운정이 들었으니 이 청둥이가 보증을 선다!‘

나는 약간 부끄러웠다.
우리 인간들은 저런 짓을 얼마나 더 저질러야 우리들이 계획하고 있는 세상이
완성될까. 아니, 완성되기나 할까. 뒤늦게라도 완성이라는 때가 과연 인간 앞에 존재하는 걸까.
나는 마음속으로만 그런 모자란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나란히 서있는 육도를 통과하자 목어의 말대로 바다거북을 닮은 섬 풍도가
푸른 바다위에 편안하게 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풍도 앞쪽은 인천에서 오는 배나 이곳 고깃배들의 선착장이 있어서 분주하다보니
안전하지 못하다. 풍도 동쪽해안 끝으로 돌아가면 편안하게 쉴 만한 바다 밑이 있어.
그곳엔 빨강 빛 바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곳이다.
그리고 가을이 좀 더 깊어지면 이곳 풍도 산허리를 빙 두른 단풍 빛깔은 절경이다.
이 풍도의 빨간 단풍 색깔 때문에 이곳 가을 맑은 바다는 모두 붉은 빛깔을 띠게 되지.
이 단풍 색깔이 뚝뚝 떨어져 물들여진 탓에 이곳 해안가의 바위는 모두 빨갛게 변했다지.
풍도 마을엔 내 몸보다 열배나 더 큰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나의 몸이 되었던
해망산 큰소나무와 같은 해 따스한 봄날에 돋아났지.
은행나무가 노란 단풍이 들면 그 환한 빛이 오십리 밖 대부섬 황금산의 이마를
먼저 노랗게 물들인 다음에 소야바다 해망산 꼭대기 까지 비친다구.
내가 해망산 큰소나무로 있을 땐 바다건너 풍도의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저 은행나무를
아주 부러워했었지.
내가 지금은 목어로 변했지만 저 은행나무가 분명히 나를 알아 볼거야‘

목어도 들뜬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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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07 - 육도를 지나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0:56
조회수: 2038 / 추천수: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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