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1.21

['나무물고기' 108 - 풍도 바다의 밤]

육도를 지나 풍도가 가까워지자 그곳 바다에서 사는 고기떼들이 마중을 나왔다.
등지느러미에 한껏 멋을 내거나 몸에 갈색 띠를 두른 고기들도 보였다.
처음엔 먼발치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만 있다가
용기 있는 녀석들이 먼저 가까이 다가와서 주둥이로 목어의 나무 몸을
가볍게 두드려 보기도 하고 나의 발가락 사이에 입을 대보기도 했다.
그중 도톰한 몸에 주황색 벨벳을 두르고, 툭 볼가진 쌍꺼풀 눈, 입술에 빨간 루즈를
진하게 바른 물고기 한 마리가 아름다운 자태로 청둥이의 뒤를 쫓아가면서
그의 엉덩이 깃털에 자꾸만 빨간색 입술을 내밀었다.

청둥이는 날 보라는 듯이 턱을 더욱 위로 치켜 올리고 태연한 척 애를 쓰며
그의 노란 물갈퀴를 여유롭게 움직여 헤어갔다.
목어의 등위에 앉은 꽃지가 그 주황색 물고기를 아주 못마땅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우리는 풍도의 선착장을 비껴지나 동쪽 끝 해안 붉은 바위들이 줄지어 박혀있는
아름다운 바다 밑에 안착했다.
바위사이엔 파래가 넓은 잎을 너울대고 그 속에서 놀고 있던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우리를 맞이했다.
목어가 먼저 커다란 붉은 바위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밤은 이곳에서 쉬어가자.
금방 해가 저기 서쪽 수평선 밑으로 내려올 거야‘

목어도 이제 긴장감이 풀렸는지 바닥에 몸을 길게 내려놓았다.
꽃지가 목어의 등위에서 내려와 조그만 바위 밑에 앉았다.
거의 하루 내내 물속을 헤어왔던 터라서 갑자기 피로감이 찾아왔다.
설레임을 가누지 못한 청둥이가 나에게 주변을 돌아보자고 보채길래
내가 꽃지쪽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꽃지가 못이긴 척 청둥이를 따라 나섰다.

파래 아래쪽엔 검푸른 김이 자라고 그 밑으론 미역줄기와 톳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바닥엔 우무가사리 사이로 작은 돌멩이를 닮은 전복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다.
말미잘이 섬세한 촉수로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그 옆에서 분홍색을 띤 오징어가 가느다란 발로 바위를 붙잡고 몸을 물결에 맡겨
한들거리면서 쉬고 있었다.
청둥이가 갑자기 괙괙 소리를 외쳤다.

‘뭐 이런 녀석이 있어? 저 비뚤어진 입을 봐. 이 녀석은 게으르기가 한량이 없어서
맨날 바닥에 배를 붙이고 누워 있다가 저렇게 얼굴이 틀어져 버렸는가봐!‘

넓적한 광어가 하얀 배를 들썩이더니 왠 요상한 놈이 바다 속에 들어 왔네 라며
사팔뜨기 눈을 한번 치켜떠서 청둥이를 힐끔 거리다가 마치 종이가 바람에 날려가듯이
바닥을 스치며 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청둥이와 꽃지가 주변 바다 밑의 산책을 마치고 도란거리며 돌아왔다.
한껏 상기된 청둥이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마구 떠들어댔다.
굳이 다른 곳에 찾아갈 생각하지 말고 우리들은 여기서 평생 눌러 살자는 둥,
혼자서 별의별 이야기와 황당한 계획들을 쏟아내며 떠들어댔다.

서쪽 바다에 황혼이 퍼지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의 색깔이 더욱 붉게 변했다.
해가 지면서 쏟아놓은 붉은 빛을 이 바위들이 몽땅 빨아들여 머금었다.
갈매기들도 집을 찾아 돌아오는지 넓은 날개 그림자가 투명한 물속에 어렸다.
갈매기들 끼리 서로 주고받는 소리가 마치 고양이 울음소리를 닮았다.
그것을 본 꽃지가 갑자기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면서
자꾸만 목어의 턱 지느러미 밑으로 파고들었다.
황혼이 점점 그 빛을 잃어가더니 금방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속에서 간혹 물새 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은 아직도 집을 찾지 못했는가 봐!
이 컴컴한 야밤에 저 놈은 이젠 집에 찾아 들어가긴 다 틀렸다.
하기야 뭐! 이곳에 통행금지 시간도 없을 것이고 니집내집도 없을 것인데
아무 곳에나 앉아서 자고 가면 되지 뭘! 괙괙괙‘

규칙적인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청둥이의 종알거리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 같았다.
내가 스르르 잠에 막 빠지려는 순간에 청둥이가 부리로 나의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내가 귀찮다는 듯이 잠에서 깨어나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떴다.
눈 앞 저만치 바다 속에 노란빛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그 노란빛에서 약간 쉰듯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혹시 바위 밑에서 쉬는 나그네가 해망산 큰소나무 아닌가?
풋풋한 이 송진냄새는 해망산 소나무가 분명해 뵈는데...’

‘그래. 날세! 내가 오늘은 물고기 형상을 하고 자네의 섬에서 하룻밤 쉬고 있다네’

목어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저만치 물속에 노란 빛이 훨씬 더 환해졌다.
아까 육도를 통과하면서 목어가 말한 풍도 은행나무가
우리들 눈앞에 우람한 형체를 어렴풋이 드러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오랜 세월 땜에 눈은 침침해졌어도
나와 갑장인 해망산 큰소나무 자네를 못 알아 볼 리가 없지.
자네가 정축년 초가을 큰바람에 넘어졌을 때 우리는 무척 서운했다네.
자네의 그 멋진 자태는 소야바다 인근의 자랑거리였지‘

‘다 옛날이야기지. 내가 넘어지고 나서 몇 년 세월이 흐른 뒤에 어떤 청년이
이렇게 날 목어로 만들어 해망사가 폐사될 때까지 절간을 지키게 되었다네‘

‘자네 몸을 깎은 칼끝 솜씨가 아무래도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네.
내 감에는 한 때 조선 최고의 무사라고 불리던 김무석의 솜씨가 분명한 것 같으이‘

‘아니! 자네가 어떻게 김무석을 아는가?’

아항! 한양성 경강과 이곳 남양만 군자만 소야바다에서 그의 이름은 전설이었어.
아마 경신년이었지? 수적들과 왜구들이 합세하여 김포 강화를 쓸어버리고
이곳 풍도에 산채를 틀어 서해바다에 뜬 세곡선과 황당선을 노략질할 때
조정이 수군들을 몇 번 보냈으나 워낙 적당들의 세력이 크고 완강해서
평정을 못하고 빈번히 패퇴를 했지.
그래서 별무사들이 풍도의 왜구 진영에 살수로 잠입해서
결국 적당들을 모두 토포했었네.
그 별무사들 중에 김무석이라는 무장이 있었는데 왜구의 우두머리와
마지막 결투를 바로 내가 서 있는 마을 어귀에서 했었지.
김무장의 그 귀신같은 칼솜씨는 지금도 내 눈에 삼삼하다네‘

김무석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청둥이가 그들의 대화 속에 끼어들었다.

‘조선 제일검 김무장님이 이 청둥이의 스승이오!
내가 그의 수제자가 되어 그의 모든 검법을.......괙! 우익 괵괴익‘

내가 아무도 모르게 즉시 청둥이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그의 노란 부리를 손아귀로 꽉 쥐어 닫아버렸다.
청둥이가 더 이상 입을 벌리지 못하고 남은 뒷말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말을 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지 연신 꼬리털을 탈탈 털어대며 안달을 했다.
목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자네 감이 맞네! 내 몸을 만든 이가 바로 그 김무석의 아들이라네’

‘호! 아들이 그 애비의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았네 그려.
내가 살아생전에 그의 비상한 솜씨를 자네의 몸에서 다시 볼 수 있다니!
이제 나도 쓰러질 날이 금방 올 텐데... 내 몸이 쓰러진 후에 그런 솜씨를 만나면
원이 없으련만... 요즘 기계발이 득세하는 세상에 어디 그런 솜씨가 다시 있겠는가‘

‘아니, 쓰러질 날이라니? 자네의 그 우람한 자태는 여전히 싱싱하게만 보이네’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다네. 십수년 전에 밑둥치 옆구리가 자꾸만 썩어서 힘겨워 할 때
마음 급한 마을 사람들이 일단 시멘트를 우겨넣어 때웠지만, 이것이 본디 내 살과
너무 달라서 불편하기 짝이 없네. 바닷바람이 조금만 거세게 불어도
옆구리가 아파서 숨쉬기가 불편해.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오래 살았지‘

또 청둥이가 그만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면서 큰소리로 떠들었다.

‘엥! 그놈의 인간들이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은행나무 둥치 썩은 구멍에
시멘트를 퍼부어 때웠단 말이요?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것이 인간이야!
나무와 돌도 구별 못하는 것이 인간의 눈깔이라구. 아야얏! 꽥꽥‘

이번엔 꽃지가 집게발로 청둥이의 날개 밑 겨드랑이를 강하게 꼬집었다.
청둥이가 드디어 말참견을 포기하고 둘의 대화를 다소곳이 듣고만 있었다.
목어와 은행나무가 두런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는 밤새 계속되었다.
파도소리가 그들 이야기에 장단을 깔았다. 그리고 가끔 물새 의 긴 울음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날 밤 나는 은행나무 무성한 노란 이파리에 파묻혀 편안한 잠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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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08 - 풍도 바다의 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1:05
조회수: 1928 / 추천수: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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