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1.23

['나무물고기' 110 - 김무석을 보다]

우리들이 풍도바다를 멀리 벗어나자 물때는 금방 간조가 되었다.
뒤편으로 멀리 보이는 풍도가 훨씬 더 불쑥 높아 보였다.
이제 들물을 타고 서북 방향에 있는 이작도를 향해 헤어갔다.
썰물이 가볍고 급한 대신에 들물은 무겁고 강직하게 느껴졌다.
들물에 풋풋한 갯향기가 우리의 몸을 묵지근하게 감싸 안았다.
평생 동안 몸속에 껴껴이 쌓인 찌꺼기들을 갯향기가 말끔하게 씻어내 주는것 같았다.
바다를 헤어다니는 물고기들의 종류도 바뀌었다.
가끔 팔뚝보다 더 큰 물고기들이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날렵하게 우리들 곁을 스쳐지나 갈 때마다
청둥이가 몰래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런 청둥이를 보고 내가 농담을 던졌다.

‘조심하라구! 저 물고기들이 톱날 같은 이빨로
너의 살찐 엉덩이를 한입 베어 먹고 싶은가봐. 흐흐흐‘

‘걱정도 팔자네! 저런 애들은 내 단단한 부리에 한번만 당하면
삼십육계 줄행랑 칠거야. 괙괙‘

청둥이가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론 약간 겁이 났던지 속도를 늦추어
내 곁으로 와서 나란히 헤어갔다.
청둥이가 바짝 다가와서 호기심 많은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그런데, 넌 김무석 무장님과 똑 같은 인간이면서
왜 검술을 배우지 못했지?‘

‘김무석은 먼 옛날, 삼백년전에 살았던 사람이야.
난 그의 모습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목어에게 그의 이야길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어. 그리고 난 무술 따위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말에 청둥이는 실망한 눈빛을 보였다.
이작도 남쪽에 떠있는 작은 섬들이 멀리 보였다.
공경도 두 개의 섬 사이를 지나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사승봉도를 향해
내쳐 달리듯이 헤어갔다.
사승봉도에 도착하자 해가 우리들 머리 위에서 서쪽으로 저만큼 비켜섰다.
목어가 사승봉도 바다 밑에 쉴만한 자리를 찾았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 들물이 곧 빠지기 시작하면 출발한다.
이 섬 바로 뒤에 이작도가 있어. 옛날에 이작도에 아주 유명한 큰 해적이 살았어.
그 해적의 우두머리가 김무석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
두 사람이 어렸을 적부터 한 스승 밑에서 글과 무술을 배웠지‘

김무석의 이야기가 나오자 청둥이의 눈빛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청둥이가 목어의 턱밑으로 바짝 다가가서 조바심을 냈다.

‘괙괙, 한 스승의 제자라면서 왜  그 사람은 도적이 되고
김무장님은 훈련도감 별무사가 되었지?’

‘세상의 인연이란 그렇더구나. 그 두 사람이 스승 밑에서 출가하여
나란히 훈련도감 별무사로 들어갔어.
당시에 그의 검법이 김무석보다 훨씬 더 출중하다고 알려져 있었지.
그런데 그의 고향 충청도 용포에서 민란이 일어나 그의 식구들뿐만 아니라
마을 일가들 대부분이 관군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했어.
그 민란의 주모자 중 한사람이 그의 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병조에서
그를 체포하여 심히 문초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체포되면 심한 고신을 당해 죽거나 혹은 살아남아도 노비로 팔려가게 된다구.
비변사 군장들에게 체포되어 끌려가는 것을 김무석이가 빼내어 친구의 도주를 도왔지.
그는 곧바로 고향으로 달려가 관군에 쫓겨 계룡산까지 밀려간 살아남은 식구들과
민란 주모자들을 찾아냈어. 그리고 그들과 함께 관군의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여
대천에서 배를 띄워 이곳 이적도에 들어온거야.
이 조그만 섬에서 먹고 살아갈 일이 막연하다보니 해적질을 하게 되었어.
그는 당시 서해안 일대를 주름잡은 유명한 수적이 된거야'

청둥이의 눈은 더욱 반짝였다.
궁금증 때문에 바닥을 발로 몇 번이고 긁어대며 목어의 이야기를 독촉했다.

‘예조판서 영감의 환갑잔치를 앞두고 각 지방 수령이나 이곳저곳 지주들이 뇌물로 바치는
온갖 귀한 물건을 싣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배를 약탈한거야.
화가 난 영감이 세작을 보내 해적들이 숨어 사는 이작도를 알게 되었고
대규모 수군과 별무사들이 토포꾼으로 출병하게 되었지.
김무석이 전투 중에 해적들의 두목이 되어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된거야.
흐흠...말을 한꺼번에 많이 하다 보니 이거 목이 마르구나.
어? 물때가 다 되었어!‘

나도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안달이 난 청둥이가 이야기를 잠시 멈춘 목어에게 큰소리로 짜증을 부렸다.

‘앙이! 지금 우리가 물속에 들어 앉아서 천지사방이 물 뿐인데
무슨 목이 마렵다고 헛소리를 하냐구?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데?  친구 간에 어떻게 서로 칼질을 했을꼬!
우리 김무장님은 어떻게 되었는데?  궁금해서 미치겠구먼. 괙괙괙!‘

그만 출발 준비를 하려고 목어의 등위로 올라가던 꽃지가 저런 청둥이의 모습을
귀여운 듯이 바라보며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
목어가 턱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자! 썰물이 시작되었다. 이 썰물을 타고 서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아무리 부지런히 헤어가도 백아도 인근엔 캄캄한 밤중이 되어 도착할 거야.
이제 그만 출발하자!‘

꽃지가 청둥이를 향해 집게발을 들어 올려 빨리 출발할 준비를 하라고 손짓을 했다.

‘아니? 여기서 하룻밤 쉬어가면 안될까.
오늘 낼 사이에 갑자기 바다물이 말라 버릴 것도 아니고...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고 가면...’

청둥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어가 꼬리를 힘차게 저어 앞장을 서면서 말했다.

‘자 요 이야기는 이만 접고.... 다음 기회에 또 해주마!’

우리는 썰물이 만드는 해류를 따라 백아도로 방향을 잡아 서남쪽을 향해 헤어갔다.
청둥이는 검푸른 바다 속을 헤엄쳐 가면서 자꾸만 김무석을 떠올렸다.
초가을 오후의 강한 햇빛이 물속에 들어와 여러 다양한 형상과 빛깔을 만들었다.
그 형상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김무석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해적이 된 그의 친구가 홀연히 나타나기도 했다.
그 둘이서 정답게 어깨를 겯기도 하고 또 칼을 휘두르며 날카롭게 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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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10 - 김무석을 보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1:21
조회수: 1994 / 추천수: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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