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1.31

['나무물고기' 113 - 날개섬 우도]

날씨가 흐렸다.
구름 속에 깊이 잠긴 해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아침이 밝았다.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선갑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 선갑산 중턱에 머물렀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 선갑산과 버금가는 높이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아찔한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야말로 섬전체가 아무도 함부로 오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절벽덩어리였다.
이 섬을 두고 서해바다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갖고 있는 제일 큰 무인도라고 했다.
우리가 잠을 잤던 바다 밑 바위들엔 홍합이 가득 붙어 있어서
번쩍번쩍 빛나는 검은 철주갑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청둥이가 역시 맨 먼저 일어나 부산나게 들락날락하면서 우리를 깨웠다.

진즉 눈을 뜬 목어도 바닷속에 들어온 잔뜩 찌뿌린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어젯밤에 서럽게 울던 꽃지는 다시 새로운 하루에 대한 기대로 무척 밝은 표정이었다.
물속에 든 흐린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목어가 입을 열 때까지
청둥이는 바쁜 마음에 애가 탔다.

‘물속에 하늬바람이 들어왔다. 파도를 잘게 써는 바람이니 오늘 중에 비가 제법 내리겠구나.
그리고 곧 큰바람으로 변할게야. 초가을 큰바람이면 보통 이틀 낮 삼일 밤을 분다‘

‘괙괙! 제깟 바람이 물 밖에서 암만 불어봐야 여기 물속까지 뒤집을까?’

‘흠.... 바람이 길면 물속도 뒤집힌다. 이 바람 끝엔 날씨가 차가워지고
뒤집힌 물속도 차가워져서 우리들이 힘들어 진다’

나는 목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청둥이의 오른쪽 날개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오늘 하루뿐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나의 눈엔 엊그제 마산수로를 통해서 서해바다로
빠져 나올 때부터 급해진 목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떠날 채비들을 하자. 오늘은 청둥이가 꽃지를 등에 태워라.
여기 선갑도에서 정남쪽으로 십리 쯤 헤어가면 날개섬 우도가 있다.
너른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깃털처럼 아주 작은 섬이다’

청둥이와 꽃지가 서로 부끄러워하며 망설였다.  
먼저 청둥이가 등을 내밀자 꽃지가 못이긴 척 하며 등에 올라가
양쪽 집게발로 깍지를 끼어 청둥이의 목을 조심스럽게 감았다.
청둥이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얼굴이 금방 빨개졌다.
우리는 여기저기 작은 파도가 이는 바닷속을 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오른쪽으로 성깃성깃 돋은 하얀 바위로 빙 둘러쳐진
하얀이빨섬 백아도가 멀리 보였다. 거대한 상어가 입을 크게 벌려 하얀 이빨처럼
보이는 백아도를 배경으로 닭섬, 까마귀섬, 갈매기섬, 기러기섬, 제비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새를 닮은 섬들이 저곳까지 날아가다가 우연히 떨어뜨린 날개깃 하나가
바로 우리들이 찾아가고 있는 날개섬 우도가 되었을까.
꽃지는 청둥이의 등이 전혀 낯설지 않고 자신의 살처럼 포근했다.
마치 엄마의 따뜻한 품안에 안긴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청둥이가 목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암만 봐도 오리섬은 없는데.... 내 날개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괙괙
기러기나 갈매기, 특히 제비날개 따윈 나와 아무 상관도 없을텐데!‘

목어가 청둥이를 바라보며 그냥 웃기만 했다.
작은 파도 사이에 동심원이 여기저기 그려지기 시작했다.
바다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목어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가을비 치고는 빗줄기가 굵다. 오늘 저녁 들물에 큰바람이 몰려 올 거야’

수심이 갑자기 깊어져서 바닥이 시퍼렇다 못해 검게 보였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나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날개섬 우도는 그저 민둥한 돌섬이나 다를 바 없었다.
작은 섬이라서 우리가 잠시 쉴만한 곳도 없었지만 심상치 않은 날씨가 우리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우도 바다 밑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나자 목어가 먼저 앞장을 서며 말했다.

‘우도의 동편 바다 밑이라고 했다. 수심이 깊고 해류가 수시로 변하는 곳이니
모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우도를 오른편으로 끼고 돌아서 동편 바다 밑을 보고 내려갔다.
족히 내 키의 열배쯤 내려가자 모자반이 대나무처럼 솟아 해류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자반 맨 꼭대기를 스쳐 지나서 더 아래로 내려갔다.
수압이 가슴을 압박하는 탓인지 숨쉬기가 힘들고 손이나 발이 마음먹은 것처럼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목어가 우리들에게 이쯤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눈짓으로 말했다.
목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숨을 크게 들이 쉰 후에 밑으로 향했다.
모자반으로 이루어진 해중림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마치 절벽처럼 급한 경사가
시작되었다. 그쪽은 바다에서도 깊은 계곡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깊은 탓에 빛이 채 도달하기도 어려워 무척 컴컴했다.
목어도 더 이상의 수압을 견디지 못했다. 조금 더,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다가
갑자기 목어의 나무 몸 어느 구석이 무너지는지 우지끈 소리가
고요하던 바닷속에 울렸다. 목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들 곁으로 다가온 목어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수심이 너무 깊다. 수압 때문에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어.
조금만 더 내려가면 손에 잡을 수 있었는데....’

‘내 날개를 보기는 했던거야?’

목어가 끄덕이며 말했다.

‘손에 잡힐 듯이 보였어. 바닥의 바위에 붙어서 기생하는 갈색 깃털말풀을 보았지.
그것 몇 뿌리만 캐면 너의 오른쪽 날개를 만들 수 있어‘

‘엥이! 이번엔 내가 직접 내려 갈거야. 내가 깃털풀인지 깃풀말인지를 캐서
다시 돌아올 때 까지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우리가 말릴 새도 없이 꽃지를 등에 업은채 청둥이가 발로 물을 힘껏 차면서 밑으로 내려갔다.
모자반 뿌리 근처까지 내려가 바닥에 거의 몸을 붙이고 계곡이 시작되는
급한 경사 쪽으로 힘들게 움직였다.
그것을 내려다보고 크게 놀란 목어가 외쳤다.

‘안돼! 그만 돌아와!’

청둥이도 역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나 청둥이는 자신의 오른쪽 날개를 곧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상기된 얼굴이었다.

‘나도 봤어! 어두운 바닥에서 반짝이는 깃털을 봤어! 꽃지도 봤지?’

꽃지가 까만 눈을 반짝이며 끄덕였다.
청둥이의 등에 업혀 밑바닥까지 들어갔던 그녀는 반짝이는 깃털말풀을 눈여겨
보았던 것이다.
목어가 수압 때문에 괴로운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안되겠다. 우도로 다시 되돌아가 바닷물이 가장 빠지는 간조 물때를 기다리자!
일단 위로 올라가자‘

우도 바다 밑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 꽃지는 청둥이의 등에 업혀서
그의 목을 꼬옥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왜들 이렇게 힘들어하지? 나는 견딜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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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13 - 날개섬 우도]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1:51
조회수: 1957 / 추천수: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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