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9.02.05

['나무물고기' 117 - 파도 위에 눕다]

폭풍우는 바닷속까지 결국 뒤집어 놓았다.
날개섬 우도에서 선갑도까지는 십여리에 불과했지만
이미 거센 폭풍우와 급하게 몰려오는 밀물에 뒤집혀지기 시작한 바닷속에서
우리는 집 채 만한 너울에 휩싸여 몇 번이나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선갑도가 폭풍우 속에서 검은 형체를 드러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도는 더욱 높아졌다.
목어의 몸은 움직일 때 마다 삐그덕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
나는 큰 너울이 밀려와 우리를 내려칠 때 마다 목어의 나무 몸이
부수어져 버릴까봐 노심초사 했다.
내가 왼손과 왼발로 목어의 뜯겨져 나간 지느러미를 대신했지만
목어는 자꾸만 왼쪽으로 무너지듯이 기울어졌다.

‘선갑도의 서편으로 붙어야 한다.
그쪽에 이 폭풍우를 피할 만한 곳이 있어‘

온통 깎아지른 절벽을 돌아서 선갑도의 서편으로 헤어가자 선갑산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뻗은 두 줄기가 둥글게 오므려서 마치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는 작은 해안이 나타났다.
우리가 그 해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쉴 자리를 찾은 나는 목어의 왼쪽 턱밑에 내 몸을 묶어 두었던 주황색 나일론 끈을
풀었다. 끈이 쓸린 자리마다 마치 채찍으로 거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살갗이 짓물렀다.
오른쪽 옆구리에 내내 껴안고 있던 청둥이를 내려놓았다.
그는 이제 눈물조차 말랐는지 건울음만 울고 있었다.
그리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컴컴한 물속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허리에 찼던 망태를 바로 옆 바위틈에 소중하게 간수했다.
우리 셋은 아무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청둥이를 꼭 껴안고 잠을 청했다.
서해바다에 나온 이후로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드는지 나는 금방 잠이 들었다.
나무 몸 어디가 크게 상한 목어의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아직도 내 몸은 거센 너울을 타고 있었다.
요동치는 바다위에 몸이 홀로 떠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 내 몸은 말 그대로 거대한 바다위에 뜬 일엽편주였다.
잠을 자다 말고 한쪽 손을 더듬거려 옆의 바위를 단단히 붙잡았다.
들물에 밀려오는 파도가 내 잠 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폭풍우도 함께 몰아쳤다.
간혹 죽음이라는 것은 바로 가까운 곳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거대한 파도 위에 아슬아슬하게 누워있었다.
파도에 쓸려 몸이 중심을 잃고 기울어지면 나는 청둥이에게 의지하듯이
그를 더욱 껴안았다.
청둥이도 내 품을 파고들었다. 그의 가슴이 따뜻했다.
가끔씩 울먹일 때 마다 그의 작은 가슴이 포르륵 떨렸다.

꽃지가 금방이라도 집게발을 딱딱 마주치며 그 까만 눈을 쏙 내밀고 나타날 것 같았다.
그 때 마다 나는 잠결에도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폭풍과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밖엔 들리지 않았다.

청둥이가 또 흐느끼며 울었다.
목어와 나의 곤한 잠을 깨지 않으려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고 있었다.
한 생명의 애처로운 몸부림이었다.

폭풍우는 칠흑 같은 밤을 통과하면서 더욱 거세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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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117 - 파도 위에 눕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11 13:01
조회수: 2029 / 추천수: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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