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02
['나무물고기' 59 - 소리를 받다_ 목어내력 17]

목어는 해망사 절간 처마 밑에서 날마다 저녁 무렵이 되면 자신의 몸을 울려 소리를 냈다.
목어가 내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는 해망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 유포리와 무제실을 싸안고 반송리를 지나
회수개 봉선대를 돌아서 연꽃잎 같은 수화리 열여덟 개의 골짜기마다 내려앉았다. 목어의 몸은 해망사 절간에 매달려 있었지만
목어의 소리는 해망산 앞뒤 자락이 만들어 낸 골짜기 마다 찾아다니며 그곳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화평함을 물었다.

청년의 스승이 뒤늦게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임금의 부름을 받아 한양으로 출사를 했다.
그도 스승을 따라 한양으로 간 그 이듬해 열아홉 살에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이미 20대에 임금의 어진과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렸고,
서른두 살에 <군선도>群仙圖 8폭병풍을 그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가 그린 <군선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옳다 그르다, 붓에 힘이 있다 거칠다, 극적 이다 소란스럽다며 서로 간에 입 싸움이
삼년을 넘도록 계속되었다. 그가 그려낸 그림마다 매번 조선 천하에 새로운 입살 꺼리를 만들게 되니 그림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재주를 귀하게 여겼고 때로 어떤 이들은 그의 그림을 두고 험담을 서슴치 않았다.
어진화사로 두 번이나 거푸 고생했던 그의 노고를 달래어 잠시 쉬게 할 겸, 임금은 그를 안기 찰방으로 제수했다.
그가 경상도 안기 땅으로 떠나는 길에 이곳 해망사 절간을 잠시 들렸던 것이 그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다.

절간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마치 그의 애비 김무석이 다시 살아서 걸어오는 듯 했다.
그가 도화서 화원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린 환쟁이라고 하기엔 훤칠한 키에
세속의 사람이 아닌 듯 차라리 선인이나 무사의 모습에 가까웠다.

이젠 앉아있는 시간보다는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은 주지스님에게 그가 인사를 올리고
주지는 그의 스승의 안부를 물었다. 주지가 행자승의 부축을 받아 토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랜만에 암자 앞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주지에게 지극한 인사를 마친 그가 앞마당을 성큼성큼 가로질러서 암자 처마에 매달려 있는 목어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이 목어를 만들어 색을 올린 이후 20년도 훨씬 더 지났으나 색깔만 비바람에 씻겨 바랬을 뿐
아직까지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온 사동이 목어 밑에 돗자리를 펴서  길고 큰 물건을 조심스럽게 자리위에 올려놓고 보자기를 풀어 벗기니
그것은 현금이었다. 현침에서 학슬까지 기러기발과 괘 위에 올려진 여섯 개의 현이 팽팽했다.
긴 끈 뭉치로 또아리를 곱게 틀어 현금의 엄미에 얹어진 부들이 꼭 성장한 여인의 어여머리 같았다.
그가 미투리를 벗고 보선발로 자리위에 앉아서 현금을 자신의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오른손의 검지와 장지 사이에 술대를 쥐고 왼손을 길게 내밀어 그의 앞에 누워있는 현금위에 올렸다.
그가 잠깐 고개를 들어 목어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짓다가 다시 눈을 앞으로 향해 숨을 골랐다.
소야바다 군자만의 겨울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하늘은 금방 함박눈이라도 뿌릴 것처럼 온통 회색빛이었다.
그의 얼굴과 시선이 현금위에 길게 뻗친 왼손을 따라갔다. 기러기발에 올려진 첫 번째 줄 문현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줄의 탄력을 두어 번 가늠한 다음에 팽팽한 세 번째 줄 대현을 장지로 지그시 눌렀다.
술대를 쥔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팔이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듯 하더니 현을 내리칠 땐 술대 끝이 갈매기가 자맥질을 하듯이
현을 내리치며 아래 가죽을 대어 놓은 공명통 대모위에 뚝 떨어졌다.
그 첫 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큰 기운이 지상에 뚝 떨어지는 낙궁 같았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대현을 누르고 있던 장지를 두어 번 구르며 지상에 뚝 떨어진 낙궁 소리를 싸안아서
현금의 공명통 안으로 오롯이 담았다. 약손가락이 유현으로 옮겨가는 것을 그의 시선이 따라 가면서
술대가 현을 뜯기도 하다가 가볍게 밀어 타기도 했다.
이미 그의 현금은 영산회상 중 네 번째 곡인 가락덜이의 초장을 넘기고 있었다.
10박 장단의 빠른 곡이지만 가락과 장식음이 덜어져서 현금만의 강직한 기품을 간결하게 뿜어내는 소리였다.

그가 어렸을 적에 어미 월명이 그의 무릎위에 현금을 안겨줄 때마다 항상 똑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거문고는 한 몸에 하늘과 땅을 함께 갖고 있으니
술대로 쳐서 그 둘이 만나게 하여 소리를 만드는 것이니라.
둘이 만나는 모양에 따라 여러 소리를 내게 되나
항상 무엇이든 첫 시작은 사람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달라서
위에서 땅이 내려오고 밑에서 하늘이 올라와 합궁되어 세상의 첫 소리를 만드나니...‘

목어의 아래쪽에서 울리는 현금의 10박 간결한 빠른 높낮이가 휘돌면서 올라와 목어를 감싸 안았다. 술대가 두 번째 줄 유현을
강하게 뜯자 땅의 기운이 일어나 목어의 비어있는 뱃속 안에서 가득 휘돌았다. 다시 상청줄을 내리치며 대모를 때리자
하늘의 기운이 목어의 몸을 싸돌다가 유현과 상청이 혼융하여 목어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의 현금소리가 하늘이 되어 올라오면 목어는 땅이 되어 내려가고, 목어가 하늘소리를 내면 현금은 땅의 소리로 받아 안았다.
그가 술대로 현을 쳐서 소리를 보내면 목어가 받아 한번 버물러서 장단을 생성시켜 되돌려 보내고
그 장단의 호흡에 따라 그의 현금이 소리를 받아내니 해망산 천지간에 가득한 것이 땅과 하늘이 합궁하여 만들어내는 소리였다.
목어는 그 소리에 자신의 몸을 실어 현금을 타는 그이의 몸에 스며들기도 하고 절간의 기둥에 들기도 하고
뒤뜰 대나무 이파리에 들기도 하고 앞뜰 배롱나무 마른가지에 들기도 하고 암자 추녀 끝에 달린 풍경 속에 잠깐 들었다가
뒷산 숲에 날개깃을 털고 둥지에 오두마니 앉아있는 멧새 품에 들기도 하고 수만리 하늘 끝에 들기도 하고
해망산 자락 동네 어느 집 부엌 저녁밥 뜸뜨는 솥안에 들었다가  지그시 눈을 감고 토방에 가부좌를 한 채 현금을 듣고 있는
주지스님의 흉중에 들기도 하고 군자만 소야바다 속에 스며들기도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그는 사동과 함께 경상도 안기 땅으로 떠났다.
그리고 木魚는 어제 처음으로 '소리'를 알게 되었다.
정조 8년 갑진년 정월 초아흐레의 아침 해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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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59 - 소리를 받다_ 목어내력 17]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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