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11_2
['나무물고기' 62 - 마고의 길]

‘그넘의 마고 할미, 할멈인지 할망구인지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이 소야바다가 날마다 썩어가는 것도  부족해서
이 바닥 밑에 굴을 파헤쳐 자기 혼자만 드나드는 길을 만들었단 말이여! 괙괙괙,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니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별 볼일이 없다는 듯이 청둥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갈수록 더 어두워져가는 물속 저편 도시가 있는 곳에서 또 작은 폭발음 같은 것이 아련하게 들렸다.
물속 도시는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목어가 그 까만 눈으로 도시가 있는 저쪽 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만년을 천번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사람, 마고를 만날 수 있다.
최초의 사람인듯 하여 그를 마고할미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평생 흰머리 한 올, 주름살 한 개 도 앉을 새 없는
아름다운 여인 마고다. 백옥으로 깎아 놓은 듯한 하얀 얼굴에 눈은 연꽃 잎 같아서 한없이 인자했으나, 입은
갈대 잎 같아서 추상보다 더 모질었다.

이 땅 처음이 불덩어리였다가 그 불이 사그라지니 그저 앞뒤 분간 없는 안개뿐이었다.
안개가 천년을 백번도 더 넘게 엉겨 붙어 있던 어느 날 그 안개를 걷고 홀연히 걸어 나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마고 아씨다.
마고는 황금빛 저울 하나를 왼손에 들고 있었다.
마고가 새벽달 같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내가 분홍빛 미소를 짓자 봄이 되어 온갖 꽃이 만발했고  열정에 들떠 가슴이 뜨겁게 되자 여름이 되었다.
그러나 뜨거운 여름에 모든 것들이 너무 웃자라서 내 마음속이 시끄럽게 되었구나. 마음속을 고르고 냉정을 되찾자 가을이 되었고
허무한 마음에 양 미간을 찡그렸더니 겨울이 되었다.

흙을 저울에 달아 모두 똑같은 무게에 똑같은 분량으로 산천을 만들고 나무를 만들고 풀을 만들고 온갖 짐승을 만들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산이 솟아났고 숨을 잠시 멈추면 평평한 들이 펼쳐지고 숨을 길게 내쉬면 바다와 강이 흘렀다.
작은 풀 한 포기나 하늘 끝에 닿는 산도 모두 똑같은 분량의 흙이고
강에서 퍼득이는 작은 물고기나 검푸른 파도 출렁이는 바다도 모두 똑같은 분량의 흙으로 만들었다.
내가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들 때 이 황금빛 저울은 티끌 한 개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눈금으로 똑같은 분량의 흙과 똑같은 흙의 무게를 달았다.

내 몸이 피곤하여 한라산을 베고 잠깐 누웠는데 발끝이 백두산 천지에 닿고
오른손은 동해바다에서 첨벙대고 왼손은 서해바다를 더듬었다.
그렇게 천년을 열 번이 넘도록 잠을 자다가 다시 깨어나 소야바다 작은섬에 나의 집을 두고 황금빛 저울을 보관하니
그 섬을 저울섬 형도라 일렀다. 그리고 내 방의 장지문은 저울섬 형도 꼭대기에 난  허연굴이요,
대문은 시화바다 쌍섬 큰가리와 작은가리섬중에 큰가리섬 옆구리에 뚦린 노랑굴이 되리라.

마고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청둥이가 주둥이를 크게 벌려 하품을 하더니
자기 자신과는 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딴청을 부렸다.

‘히힛! 마고라는 그 여자 허풍이 엄청 심하구먼! 사람들은 꼭 신을 섬겨야 하거나 혹은 자기가 꼭 신이 되려고
헛심을 쓴단 말씀이야! 왜 인간들은 꼭 신이나 신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짚세기부터 껌정 통고무신 운동화 슬리퍼에 양가죽 소가죽 뱀가죽 악어가죽으로 만든 구두까지.... 괙괙괙,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 중에 발바닥에 신을 신어야 하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뿐이야! 내 말이 맞지?
맞아! 인간 외에 신을 신는 동물이 있으면 대봐! 한번 대보라구!’

내가 청둥이를 심히 째려보자 나의 도끼눈을 피해 고개를 돌려 언덕너머 쪽을 바라보는 척 하면서
주둥이를 몇 번 딱딱 마주친 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엥이 뭘! 그게 그렇단 말이지. 에.... 또.... 마고 아씨의 말에 따르면 나 청둥이를 만들 때 들어간 흙의 분량이나
저 높은 백두산을 만들 때 사용된 흙의 분량이나 뭐 다 똑같은 분량이라는 말씀인데.....그런 내가 뭔 말인들 못하랴.
목어아저씨! 내 말이 맞지?’

아무튼 이 저울섬 형도 산봉우리 봉수대 옆에 천연 수직 동굴이 있는데 바로 그 굴이 마고의 장지문이 되는 셈이지.
이 굴 입구에서 돌멩이를 던지면 먼저 굴 속 주변 바위에 부딪쳐 튀면서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딱따그르 딱따르르르 들리다가
한참 후에 돌멩이가 퐁당 물에 빠지는 소리가 굴속 저 아래 깊은 곳에서 가늘게 들린다구.
군자만 소야바다 쌍섬 중에 바깥에 있는 큰가리섬 해안가 절벽 누런색 바위사이에 석자 넓이의 굴이
형도 봉우리 꼭대기에 있는 수직굴과 바다 밑으로 서로 통해서 맞닿아 있지.
그 두 개의 굴이 각각 마고의 방에 들어서는 장지문과 대문에 해당되니, 우리들이 있는 이곳 소야바다는
마고의 마당이나 꽃밭이 되는 셈이야.  이 바닥 아래서 들리는 파도소리는 분명히 큰가리섬의 노랑굴 입구에서
출렁이는 서해바다의 파도소리가 긴 굴을 타고 여기까지 들리는 것이지.

마고는 자신이 들고나는 일에 부정 타지 않도록 그녀의 길을 덮고 있는 소야바다에 형도에서 큰가리섬까지
네 개의 암초섬을 나란히 쌓아 올려 그 길의 위쪽 바다로 배와 물고기가 가로질러 다닐 수 없도록 표시를 해 두었어.
그녀는 네 개의 섬에 각각 이름을 붙여 콩섬, 쥐섬, 밤섬, 촛대섬이라 불렀지.
마고가 너른 큰 바다에 원행을 했다가 그녀의 집으로 들어 설 때는 큰가리섬 옆구리에 뚦린 굴에 몸을 디밀면
마치 큰 힘에 빨려 가듯 굴속으로 난 긴 대롱 같은 길로 몸이 미끄러져 형도 섬 꼭대기 허연 굴 위로 솟구쳐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어.
물론 마고가 집을 나서 서해바다에 나갈 때도 그 모양이 똑 같았다.

마고 이야기가 끝날 새도 없이 청둥이가 벌떡 일어서다 말고 곧 다시 납작 업드려 귀를 바닥에 대어
마고의 길에서 들리는 희미한 파도소리를  확인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드디어 신명나는 일을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돌변해  당장이라도 바다 밑 굴속으로 달려 갈 듯이 외쳤다.

‘화! 마고 아씨는 집에 들고 날 때 마다 신나겠다. 날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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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62 - 마고의 길]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4:01
조회수: 2036 / 추천수: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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