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8.04_1
['나무물고기' 63 - 남녀를 짓다]

마고가 집에 들어앉아 세상을 둘러보니 하늘에서는 온갖 음악이 내리고
그 높낮이와 장단에 맞추어서 초목이 흔들거리며 줄기를 내밀어 꽃을 피웠다.
피어나는 꽃의 모양과 색깔에 따라 마고의 가슴이 따스해 지다가 설레기도 하고
뜨거워지다가 가라앉기도 하고 불이 타오르듯 하다가 분홍빛 바람이 불기도 하였다.
그렇게 잠시 세월이 흘렀는데 천년이 열 번이었다.

저 바다에 물이 그득히 넘쳐 출렁이고 들판은 온갖 화초로 수놓듯 하고
강은 제자리를 찾아 절로 굽이굽이 흐르는데 왜 이내 가슴은 또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다. 마고가 절로 한숨이 나오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음악도 그저 가슴을 허전하게 할 뿐,
꽃이 태산만큼이나 피어나 쌓여 있어도 내 가슴은 그저 텅 빈듯 하구나.
마고가 애태워 하는 그 모습이 마치 상사병에 걸린 듯 했다.

어느 날 마고가 작심을 하고 황금빛 저울을 꺼내어 똑같은 분량과 무게의 흙을 달았다.
태산을 만들거나 발밑에 기어가는 미물을 만들거나 강가에 돋는 작은 풀을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분량으로 두덩어리를 만들었다.
마고가 섬섬옥수를 재게 놀려서 똑같은 사람 둘을 빚었는데 왼쪽 것은 속을 꽉차게 했던지 겉모양이 조금 작게 되고
오른쪽 것은 속이 부실했던지 대신에 겉모양이 크게 되었다.
그리고 숨을 불어넣자 잠시 후에 왼쪽 것이 먼저 흙몸둥이에 하얀 거품이 생기면서 머리부터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곧 바로 오른쪽 것은 거품도 없이 머리쪽 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먼저 숨이 허리만큼 내려온 왼쪽 것이 두리번거리더니 아직 어깨쯤에 숨이 내려온 오른쪽 것의 복부에서 흙을 한줌 파내어
자기의 배에 붙여두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누워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눈여겨 본 마고가 ‘저 왼쪽 것이 욕심 보따리 로다’ 생각하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 둘의 몸둥이에 숨이 가득차기 전에 똑같은 분량의 흙이 되도록 매조짐을 해야 했다.
둘의 숨이 허리 아래쪽으로 내려오기 전에 재빨리 왼쪽 것의 다리사이에 마고의 긴 손가락을 쏙 집어넣어서 흙 한줌을 파내어
오른쪽 것의 다리사이에 덥석 붙였다.

마고의 긴 손가락으로 파내어 버린 ‘곳’이 자궁이 되고 그 흙을 덥석 갖다 붙인 ‘것’이 남근이 되었다.
각각 ‘곳’과 ‘것’이라고 했듯이 훗날 그 모양과 쓰임새가 서로 다르게 되었다.

마고의 다급한 마음이 그 둘을 그저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고 결국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둘이 서로 아웅다웅 지내는 모습이 마고의 눈엔 좋게만 보였다.
둘이 토라져 싸우는 모습을 보면 마고의 가슴도 덩달아 아프고 둘이 맨날 붙어서 사랑꽃을 피우면 마고의 가슴도 데워졌다.
마고의 가슴이 아프고 데워지기를 하루에도 수 십번 수 백번 반복 되었다.
이랬다 저랬다 반복될 때 마다 그것은 제각각 다른 맛이었다.
마고의 예전 가슴엔 사랑만 있었다가 이제 미움도 생겨난 탓인지 그 두 가지 감정이 여러 가지 조화를 부리니
길고 긴 날에도 마고의 가슴이 허전할 때가 없었다.

다시 천년이 세 번 지난 뒤에 마고는 그 둘을 위해서 옷을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남자와 여자 그 둘을 위한 마고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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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63 - 남녀를 짓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4:05
조회수: 1940 / 추천수: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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