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7.28
['나무물고기' 64 - 마고 떠나다]

그 두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낳고 또 그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사람을 낳고 다시 그 사람들이 사람을 낳기를 거듭하여
천년이 열 번을 거듭하니 백두산 아래로부터 바다건너 한라산까지 천지사방에 사람들이 그득했다.

그러나 미움은 미움끼리 뭉쳐서 더욱 큰 미움이 되고 사랑은 사랑끼리 뭉쳐서 더 큰 사랑이 되니,
사람 아래 미움과 사랑이 있던 것이 미움과 사랑이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고 미움과 사랑 아래서
사람들이 서로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했다. 그 둘의 다툼은 사람의 생과 사를 넘나들게 되었다.
삶에는 서로 모시고 나누는 것에 있고 죽음에는 욕심과 차등이 있는데
사람들은 모시는 것도 차등이요, 욕심마저도 서로 나누는 것에 열중했다.

사람들의 욕심이 과하여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 산을 움직이고 강을 막고 바다를 메우듯이
사람끼리도 서로 숨구멍을 막아 절단 내기를 식은 죽 먹듯 했다.

저울섬 형도에 앉은 마고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런 추한 모양을 보니 억장이 막혔다.
이렇게 천년이 두 번 가도록 사람들의 못난 세월을 보고 있던 마고의 심중엔 어느덧 독한 가시가 돋아났다.
마고의 가슴에 돋은 가시에 못난 사람들의 얼굴이 엉키고 못난 세월들이 엉키고 못난 세상살이가 엉켜서
도무지 풀어 낼 방법이 없었다.
마고가 분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 혼란한 세상을 잠시 떠나있기로 작정했다.

달이 없이 별빛 유난히 초롱초롱 하던 밤에 마고가 겨울 갈대 잎 같은 모진 입술을 열어 말했다.

나는 저 태산이나 미물이나 한포기의 풀이나 사람들이나 모두 똑같은 분량과 똑같은 무게의 흙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갓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려고만 하니 이 세상이 혼탁해져서 한 길 앞을 바라보기가 무섭구나.
산이 움직이고  섬이 가라앉으면 난(亂)이요, 강이 막히거나 바다가 메워지면 병(病)이다.
산이 움직이니 너희들의 살덩어리와 뼈가 서로 분리되고 강과 바다가 메워지니 너희들의 숨구멍과 핏줄이
모두 막히게 될 것이다.  너희들 하는 짓이 모두 난이요, 병이로다.
서로 자기 욕심만을 주장하며 제각각 모두 사사로이 저울의 눈금을 만들어 저마다 손가락을 요리조리 꼽아가며
세상을 헤아리는 헛소리가 끝이 없다. 자기 것을 재는 눈금이 따로 있고, 남의 것을 잴 눈금이 따로 있으니
너희들끼리 불화와 분쟁이 그치지를 않는다. 서로 자기 저울의 눈금이 맞다고 우기다가 싸워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구나.
그래서 내 황금빛 저울을 보여주었더니 서로간에 못 본 채 입막음 하고 제각각 너희들의 저울만 내 세웠다.
나는 그런 못난 너희를 향해서 아흔아홉 번을 고운소리로 타이르고, 또 아흔아홉 번을 호통치며 꾸짖었으나
너희들은 내 이야기를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하여, 나는 너희 세상을 만들 때 사용했던 황금빛 저울을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숨겨두고
큰가리섬 노랑굴 대문과 형도 봉우리 허연굴 장지문 사이 나의 꽃밭인 소야바다에 내 진실을 묻어두고
원래 나의 자리 직녀성으로 돌아간다.
거듭 말하거니와 황금빛 저울이 감추어진 이 섬이 너희들 손에 의해 움직이거나 가라앉게 되면 어느누군들 그 화를 도저히 면치 못하리라.
마찬가지로 내 꽃밭인 소야바다를 메우거나 막아도  그 화는 너희 자손대대로 면치 못하리라.

천년이 열 번을 거듭한 후에 나는 다시 이곳에 되돌아 올 것이다.
이 땅에 다시 되돌아오는 내가 검은 옷을 입었으면 세상을 멸절하러 오는 것이고
하얀 옷을 입었다면 다시 세상을 추스러서 아름답게 가꾸려고 오는 것이 되리라.

마고의 분노 때문에 그날 밤 소야바다는 온통 하얀 파도가 일었다.
그 파도가 일으키는 하얀 포말이 저울섬 형도 꼭대기까지 싸고 올라왔다.

‘난 마고 아씨가 인간들을 내치고 떠난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어!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들이란 맨날 싸울 수밖에 없거든....
인간들에겐 싸우는 일이 젤 중요한 일이지. 암튼, 그래서 마고는 밤하늘 직녀성으로 올라간 거야? 이제 마고 이야긴 끝난 거지?
자 빨리 출발하자! 물속도시로 들어가는 문을 찾다가 운이 좋으면 마고의 길에서 롤러코스터도 탈 수 있을지 몰라!’

청둥이는 마고 이야기엔 관심 없이 그저 마고의 길에만 안달이 나 있었다.
당장 빨리 가자고 발을 굴렸으나 물막이 방조제 때문에 소야바다가 막혀서
큰가리섬 누렁굴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목어의 말에 발을 몇 번 더 구르다가 다시 앉았는데
좀이 쑤시는지 바닥에 엉덩이를 문지르듯이 좌우로 까닥거리면서 짧은 꼬리깃을 몇 번이고 탈탈 털었다.

물속 도시로 들어가는 문을 찾으려는 오후 일정을 도시를 싸고 있는 벽의 어느 쪽부터 다시 뒤져볼까 궁리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청둥이가 벼락같은 큰소리로 악을 쓰면서 다섯길 높이로 솟아올랐다.

‘끼악! 꽥꽥꽤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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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64 - 마고 떠나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4:12
조회수: 1904 / 추천수: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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