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19
['나무물고기' 67 - 벽의 저항]

우리는 오후내내 헤메었으나 물속 도시로 들어가는 문을 도저히 발견할 수 없었다.
우리들이 그 통로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벽의 저항은 더욱 완강해지는 것 같았다.
도시를 둘러싼 벽의 좌측에서부터 시작된 문 찾기는 오늘 오후만 해서도 벌써 3시간 정도 쉴 새 없이 벽을 따라 가면서 살펴보았지만
벽의 길이가 더 늘어났는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오후의 벽은 더욱 길어졌고 더욱 높아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시커멓게 어두운 벽 뿐이었다.

나는 벌써 지친 탓에 입에서 단내가 났다.
앞장서서 물속을 헤어가는 청둥이는 뭐가 그렇게도 신이 나는지 가끔 뒤쪽을 힐끗힐끗 돌아 보면서 우리들을 재촉했다.
우리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기엔 힘들 것 같았던 꽃지도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목어가 등을 내밀며 꽃지에게 등위로 올라타라고 했지만 그녀는 사양했다.
가녀린 발을 재게 놀리다가 맨 뒷다리에 힘을 주어 솟아올라 납작한 몸으로 한동안 물속을 활공하듯이 미끄러져 가다가
바닥에 몸이 닿으면 다시 발을 재게 놀려 몸을 솟구쳐 뒷다리 끝에 붙어있는 둥글납작한 물갈퀴를 수평으로 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여 길게 활공을 하는 독특한 수영법이었다. 마치 납작한 공이 물 바닥에서 통통 튀며 물속을 헤어가는 것 같았다.

앞장 선 청둥이가 꽃지의 헤엄이 신기한 듯 자꾸만 고개를 돌려 유심히 바라보았다.
일행이 하나가 더 늘어나니 청둥이가 책임감을 더욱 느낀 듯이 마치 원정 대장으로써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는 것처럼
늠름하게 앞장을 섰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도 역시 자꾸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쓰는듯 했다.
지루한 걸음에 내가 먼저 청둥이에게 말을 건넸다.

‘청둥아! 꽃지에게 물린 곳은 괜찮아?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것 같은데...’

‘내가 언제 물렸는데? 물린 곳이 없는데...’

‘앙이? 그럼 아까 죽는다고 온갖 앓는 소리 냈던 것은 뭐야? 엄살 이었구먼’

‘저놈의 인간은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꼭 저렇게 헛소리만 빌빌해 댄다니까!’

‘시국은 왠 시국? 아니, 헛소리라니? 꽃지에게 물린 곳을 그냥 관두면 성날까봐 네가 가랑이를 벌려주면 내가 후후 불어주려고 했지.
아픈걸 그냥 참지 말고... 창피하다 생각말고 엉덩이를 일루 내밀어 까봐!’

‘괙괙괙! 이 화상아! 날 골려먹는 것이 그렇게도 좋아?’

청둥이가 벌컬 화를 낸 척하면서 맨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는 꽃지를 힐끗 바라보았다.
꽃지가 집게발을 들어 등깍지 밑에 쏙 내민 까만 눈을 살짝 가렸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묵묵히 헤엄치던 목어가 말했다.

‘벽의 저항이 너무 완강해. 우리가 이 벽을 따라 가면 갈수록 벽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 같아.
일단 오늘은 이만 뒤돌아가 외지섬 바다 밑에서 진득이 풀을 구해 꽃지의 등을 치료하고 쌀섬 쪽에 편안한 자리가 있으니
그곳에서 오늘밤을 쉬자’

분명히 세 시간여를 열심히 헤어왔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단 십분도 채 걸리지 않아  다시 출발했던 자리에 도착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구만. 괙괙괙! 세 시간도 넘게 갔던 길이 되돌아오는 것은 한달음이니...’

청둥이가 외치는 말을 듣고 있던 목어가 옆에 버티어선 어두운 벽에 희미하게 서려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큰 눈을 언뜻 보았다.
분명히 살아있는 눈이었다. 그 눈이 벽 속에서 우리들을 따라 다니며 주욱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 그만 어두워지기 전에 외지섬을 들려서 쌀섬으로 가자!’

우리들의 걸음을 재촉하는 목어의 목소리엔 뭔가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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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67 - 벽의 저항]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5:41
조회수: 1866 / 추천수: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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