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19
['나무물고기' 68 - 삼켜 버리다]

외지섬 바다 밑도 이미 썩어가고 있었다.
외지섬조차 이런 지경이라면 소야바다 전체에 단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이 모두 썩어 있다는 것이다.
외지섬 바다 속 주변은 예전부터 여러 종류의 해초들이 무성했다.
오늘 둘러보니 그 많던 해초들이 모두 희뿌연 색으로 변해 대부분 바닥에 주저앉아 썩는 냄새가 오히려 다른 곳 보다 더 지독했다.
잎이 넓은 미역종류들만 희멀건 갈색으로 변해 너울대는 것이 마치 물속 유령들이 집단으로 나타나 웅성거리는 듯 했다.
희뿌옇게 변해 썩어서 말라있는 짧은 미역 더미들 밑에 여기 저기 한웅큼씩 돋아있던 진득말풀들도 모두 푸르딩딩한 색으로 변해
썩어가고 있었다.
목어가 몇 군데를 더 돌아보다가 약간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진득말조차 벌써 썩어버렸군. 바로 한 달 전만 해도 내가 이곳을 지나갈 땐 진득말풀을 많이 봤는데!’

썩은 미역줄기들이 돋아있는 바위 밑을 따라 저쪽으로 돌아가며 한참을 물갈퀴로 헤저으면서 뒤지던 청둥이가
큰 소리로 우리들을 불렀다.

‘여기! 괘괙괙! 여기 아직 썩지 않고 살아남은 진득말풀이 여기 조금 남아있다!’

우리들이 급하게 달려가자 의기양양한 청둥이가 부리끝으로 바위사이에 돋은 진득말풀을 가리켰다.
이미 푸르딩딩하게 썩어있는 진득말 사이로 살아있는 진득말풀의 녹색 줄기 몇 개가 보였다.

‘흠! 거봐! 내가 찾아 준다고 했지? 이 청둥이의 십리 밖도 훤히 내다 볼 수 있는 총명한 눈과 이 단단한 물갈퀴나 되니까
저렇게 바위틈에 숨어서 아직 살아있는 진득말풀을 찾을 수 있었지! 흠흠!’

꽃지가 까만눈을 쏙 내밀어 반짝이면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청둥이의 모습을 올려다 보았다.
훨씬 더 용감해진 청둥이가 부리로 한가닥을 끊어내다가 몸서리를 치면서 놀래 자빠졌다.

‘으악! 무지하게 쓰다! 내 주둥이가 굳어버리는 것 같아!’

진득말의 쓴 냄새가 코끝을 가볍게 스쳐지나갔다. 썩어가는 바닷물에서 생존하려고 진득말의 독성이 더욱 강해진것이다.
모두 썩은 물에 녹아버리고 겨우 몇 가닥만 살아있었지만 그것마저도 뿌리 근처 밑동은 이미 썩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꽃지가 조신한 옆걸음으로 바위 틈새에 접근하여 두뼘정도 길이의 진득말을 집게발로 끊었다.
쓸만한 것은 모두 합해서 세 줄기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물속 바닥에 버려져 박혀있는 쓰레기들을 뒤져 빨강 플라스틱 바가지의 깨진 조각을 주웠다.
꽃지의 등에 난 구멍을 막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잘라 각진 모서리를 돌멩이에 갈아서 둥글게 만들었다. 이런 나의 손놀림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던 청둥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 길쭉하게 짝짝 찢어진 것처럼 돋아있는 인간들의 손가락도 필요할 때가 있긴 있군!
손을 저렇게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동물들이 잔인한 것엔 젤 영리한 법인데....저봐! 요리조리 굽어지면서
자유자재로 꼼지락 거리는 저 손가락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얼마나 잔인하게 생겼는지...원!’

꽃지에게 등을 내밀라고 눈짓을 했다.
꽃지는 부끄러운듯 잠시 망설이다가 옆걸음으로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등을 내밀었다.
등에 난 큰 구멍사이로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누르스름한 고름이 차 올라왔다.

‘이 고름을 닦아내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뭔데?’

‘청둥이의 몸에서 가장 부드러운 속깃털 두어 가닥이 필요하다’

‘안돼!’

‘그럼 하는 수 없지, 이 상처는 치료하기 힘들다. 청둥이가 자기 깃털 두어 가닥 아끼려고 꽃지의 상처를 본척만척 하는구나’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냥 해 본 소리지! 깃털 몇 가닥이 아니라 10개라도 뽑아줄 수 있어’

청둥이가 자기의 주둥이로 날개 밑과 가슴을 더듬더니 부드러운 깃털을 뽑아냈다.
주둥이와 목에 힘을 주어 깃털을 뽑을 때 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꽃지가
마치 자신의 몸에 난 깃털을 뽑힌 듯이 깜짝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꽃지의 등에 난 구멍속에 청둥이가 뽑아준 깃털을 집어넣어 고름을 닦아냈다. 또한 깃털에 묻은 기름이
꽃지의 상처에 물이나 다른 잡것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깃털이 자신의 상처에 닿을 땐 꽃지가 다리에 힘을 주는지 딱딱한 껍질에 쌓여있는 다리의 마디와 마디가 바르르 떨렸다.

‘이 풀을 입에 넣고 침과 버물어서 이빨로 잘근잘근 씹으면 아주 강력한 접착풀이 된다.
이 진득말이 너무 써서 아까 네가 뒤로 나자빠지는 걸 보면 청둥이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거야!‘

‘뭘! 그런 것은 나도 할 수 있다’

‘그럼 청둥이가 해봐! 침과 버물어 잘근잘근 씹어서 삼키지는 말고 내 손바닥에 뱉어놓아!’

우리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목어가 씨익 웃었다.
청둥이가 진득말풀을 잠시 바라보다가 결심을 한 듯 주둥이에 우겨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진득말의 쓴맛 때문에
곧 그의 눈이 튀어 나올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주둥이 위아래가 자꾸만 서로 엇갈릴 정도로 입이 틀어지는 것을 생짜로 참으며
짭짭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씹었다.
내가 그의 주둥이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청둥이가 씹던 것을 나의 손바닥에 뱉어내려고 애를 쓸수록
자꾸만 침과 버물어진 진득말풀이 목구멍쪽과 주둥이쪽을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그만 꼴깍 삼켜버리고 말았다.
진득말의 쓴 맛 때문에 청둥이의 혀가 입천장에 오그라져 붙었는지 입을 벌리고 한참을 눈만 휘둥그레 뜬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이 손바닥 위에 뱉어내!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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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68 - 삼켜 버리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5:50
조회수: 1979 / 추천수: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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