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22
['나무물고기' 69 - 쓴 맛]

진득말풀을 삼켜버린 청둥이의 눈엔 온통 흰 창뿐이었다.
뒤로 돌아서 목을 몇 번이나 부르르 떨면서 주둥이는 헤 벌린 채 한동안 굳어져 한마디의 말도 못하였다.
입천장으로 말려 올라가 딱 붙어서 굳어버린 혀를 어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의 주둥이를 움켜쥐고 뽑으려는것 같아서 청둥이는 자신의 목을 꼿꼿이 세워 머리를 자기 등 쪽으로 잡아당기려는듯
몇번이나 헛심을 썼다.
씹던 진득말풀을 냉큼 뱉어 내놓으라고 보채는 나의 말에 점차 정신이 드는지 굳어진 혀를 억지로 내돌려서 겨우 몇마디 내 놓았다.

‘괵괵괵! 아흐... 녀무 쎠서... 내 쥬딩이가 어디로 날아갸 배린 것 같아... 이제 생각해 보니
내 입은 한번 넣어... 씹던 것은... 다시 뱉어 낼 수 없셔어!’

꽃지가 그런 청둥이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괜히 이 아까운 약풀 한줄기로 너의 배만 불려버렸구나!’

‘뭐여! 내가... 아무리 배고프다손... 꽃지의 상처에 약으로 쓰일 풀을... 먹겠어?...원래 나의 입은 너무 분명해서
한번 입안에 들어온 것은 뱉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삼키게 되어 있어.괵괵괵... 하이고...너무 써서... 말이 제대로 안된다’

나는 남은 진득말풀 두어 줄기를 입속에 넣고 씹었다. 쓰디쓴 맛에 그냥 입 안에 침이 그득하게 고였다.
입 안에 고이는 침들과 버물어서 질겅질겅 죽이 될 만큼 씹었다. 거의 혀가 굳어버릴 만큼 지독하게 쓴 맛이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그 쓴 맛을 느끼려고 애를 썼다.
차츰 그 쓴 맛 속에서 단맛과 고소한 맛의 기운이 가늘게 살아 나올듯 하다가 다시 없어졌다가 또 어쩌다 쓴맛 외에
다른 맛 한 줄기가 겨우 혀끝에 바람처럼 와 닿았다가 또 급작히 사라지고 온통 쓴 맛이 입 전체에 가득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쓰디 쓴 말풀을 질겅질겅 씹는 나의 모습을 보고 청둥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내참! 인간에게도 쓴맛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있다니!’

내가 감았던 눈을 뜨고 손바닥을 펴서 입안에 죽처럼 변해있는 진득말풀을 조금씩 뱉어내자
청둥이가 호기심에 찬 눈을 반짝거렸다. 그리고 꽃지와 목어를 번갈아 보면서 마구 떠들었다.

‘으와! 저것 좀 봐 저것! 입안에서 줄곧 씹던 것을 뱉어내는 것 좀 봐! 으아 입안에 씹던 것을 저렇게 내 뱉을 수 있다니!
화! 인간이라는 동물의 중요한 특징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것이라는데 확실하네. 저 말풀이 달면 저렇게 뱉어 낼 수 있겠어?
확실해! 저봐! 입안에 씹던것을 자기 손바닥에 뱉는것 좀 봐! 저것은 괴물만이 할 수 있는 짓이야. 괙괙괙!’

손바닥에 모두 뱉어내고 나서 나는 청둥이를 빤히 바라보면서 천연스럽게 말했다.

‘인간만 그럴 수 있는게 아냐! 송아지도 먹었던 것을 다시 게워내서 되새김질 한단다!’

‘그러니까 소는 맨날 잔인한 인간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평생 죽도록 일만 하다가 결국 모든 살이며 뼈며 가죽이며 피까지,
눈알부터 꼬리까지 송두리째 인간에게 바치지! 두고 봐! 소는 인간들 곁을 떠나지 않고 더 버티다간 반드시 큰 재앙을 뒤집어쓰고 말거야!
그러기 전에 빨리 인간들을 내치고 떠나야 돼! 음....그러기엔 소가 너무 순진하고 우직하지 뭐! 잔인한 인간들 곁에 있다간
분명히 벼락을 맞게 되어 있다구! 꽃지야! 내 말이 맞지? 맞고 말구! 이 청둥이는 절대 틀린 말 하지 않는다!
괙괙괙 목어아저씨! 인간들 곁에 있다간 인간이 맞아야 할 벼락을 대신 맞게 된다구! 내 말이 맞지?’

나는 손바닥에 뱉어낸 진득말풀 으깬 죽을 가늘게 펴서 꽃지의 등깍지에 난 구멍 주변에 빙 둘러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아까 준비해 놓은 빨강 플라스틱 덮개를 덮은 다음에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눌러서 붙였다.
플라스틱 조각 옆으로 말풀 죽이 조금씩 삐져나왔다. 새끼 손가락으로 삐져나온 말풀 죽을 꾹꾹 눌러서 매끄럽게 다듬었다.
청둥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부러운 듯이 내내 지켜보다가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나서 대뜸 참견했다.

‘헹! 저기 꽃지 왼쪽 어깨 쪽 위에 말풀죽이 삐죽 튀어 나왔네. 제대로 좀 하지!
거기 좀 더 눌러서 다듬어야 돼. 거 참! 저렇게 재주가 없는 인간도 다 있다니’

목어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어디 보자! 꽃지의 등위에 딱 붙어있는 빨강 플라스틱 조각이 특별한 장식물처럼 예쁘구나.
자! 꽃지가 오늘 하루 밤만 별 탈 없이 잘 보내면 그 등깍지를 치료한 곳이 내일 아침엔 완전히 굳어져
바위보다 더 단단해져서 절대 물이 스며들 수 없을 거야. 그동안 움직이면 안되니까 내 등위에 올라타라!
그리고 등깍지가 따뜻해야 빨리 굳어질 수 있다. 청둥이가 수고스럽더라도 오늘밤 내내 날개를 펴 꽃지의 등을
따뜻하게 싸안아서 잘 지켜주어야 할 것이야! 이제 쌀섬 바다 밑으로 가서 쉴 자리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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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69 - 쓴 맛]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5:55
조회수: 1863 / 추천수: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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