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8.26
['나무물고기' 49 - 칼에게 묻다_ 목어내력 07]

김무석은 목책더미에서 등을 떼어 두 발짝 앞으로 나가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천덕기가  공격기회를 노리며 공중에 협도를 몇 번 더 돌려 여우울음소리를 길게 뽑아냈다.
그는 원래 김무석과 함께 훈련도감 별무사로 있을 땐 본국검중 장검을 빼어나게 잘 썼다.
그러나 김무석의 예도에 밀려 협도와 월도의 별무사 사범을 했다. 그도 워낙 칼 솜씨가 빼어나서
협도를 다루는 것 역시 탁월하여 그의 우람한 몸에서 나오는 힘이 협도의 여러 새로운 품새를 만들어 낼 정도였다.
협도는 칼에 긴 자루를 달아 더 길게, 그리고 더 힘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미첨도 또는 장도라 불려 지기도 한다.
이는 두 손으로 크게 베어나가므로 매우 사납고 강력하여 병장무술에서는 그 능력이 대단하지만 이런 야투에서는 섬세하지 못하다.
그러나 젊은 날에 본국검을 빼어나게 사용했던 그의 손에 들려진 협도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약간 웅크린 채로 자신의 발등만 무심하게 바라보는 김무석을 향해 천덕기가 협도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공격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천덕기 역시 그의 칼솜씨를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였다.
훈련도감에서 김무석의 중길이 예도는 천하가 다 아는 검술이었다. 예도보다 반 뼘이 짧은 그의 검을 오른손과 왼손에 번갈아 쥐어가며
검무를 펼치면 누구든 탄식을 했다. 땅을 가볍게 박차고 뛰어 올라 그의 발이 다시 땅에 닫기 전에 봉두세로
좌우를 어슷하게 여섯 번을 몰아쳐 베나가는 솜씨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고난도 검법이었다.
한 때 한양의 무사들이나 무뢰배들 사이에 김무석의 검을 듣고 반 뼘이나 한 뼘 정도 짧은 예도가
너도 나도 유행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여덟 호흡 정도에서 탐색이 끝나면 공격력이 좋은 협도가 먼저 내 옆구리를 어슷하게 베며 파고 들 것이다.
그가 공격을 하기위해 한 호흡을 길게 들이 쉴 때 나는 칼을 천천히 빼어들어 그의 속도를 일단 흐트러 놓는다.
협도 같은 무거운 무기가 제 속도에 들어서게 되면 제압하기가 더욱 힘들어 진다.
협도가 원하는 속도를 타기 전에 단 일격으로 끝내야 한다.

그가 다시 한 번 협도를 공중에 크게 원을 그려 여우울음소리를 길게 뺀 뒤 자신의 가슴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바로 이때 나는 칼집에서 천천히 칼을 빼어냈다.
칼집과 칼날이 마찰하면서 스르릉 칼이 울었다. 칼날이 미세하게 떨며 우는 소리가 손바닥을 통해서 전달이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결투에서 왠만한 적은 이 칼날의 울음이 그치기 전에 베어졌다.

그가 칼을 빼어든 속도가 워낙 느렸던 탓에 협도는 이미 공격 직전에 호흡이 갈리기 시작했다.
협도가 갈린 호흡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기합소리와 함께 발을 구르며 뛰어 올랐다.
지남침세가 흐트러지면서 칼끝을 아래로 향하여 곧장 철우경지세로 공중에 뛰어 오른 협도가 한 걸음에 그의 공격권 안으로
좁혀 들어와 옆구리를 겨냥하고 길게 부채 살처럼 위로 원을 그리며 파고들었다.  천덕기도 싸움을 급히 끝내고 싶어 했다.
상대방의 무기가 길고 무거울 땐 뒤로 물러서면 오히려 치명적이다.
이미 협도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전에 김무석은 자신의 왼쪽 무릎을 거의 바닥에 대어 가슴팍을 모래위로 스치듯이 허리를 구부렸다.
여우울음 소리를 내는 협도를 가까스로 어깨 너머로 흘려보내면서 한 발을 깊이 앞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칼끝을 곧추세워서 왼쪽 어깨위로 어슷하게 비껴 올린 자세로 협도 자루를 잡은 상대방의 손목과 가슴을 몸으로 스치듯이 밀었다.
협도는 옆으로 길게 휘둘리는 탄력으로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고 그의 왼쪽 어깨위로 곧추세워진 칼날에 목을 내주었다.
협도도 무겁고 그것을 멀리 휘두르는 몸도 무거워서 칼집이 깊었다.

천덕기가 자신의 무거운 협도에 끌려 몇 발자국 떼다가 몸이 기우뚱하면서 협도를 땅에 짚고 겨우 균형을 유지했으나
이내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앞으로 덜썩 쓰러졌다.

그는 자세를 낮추어 칼등을 왼쪽 어깨에 밀착한 채로
뒤쪽의 모래밭에 엎어져서  숨을 길게 내쉬다가 뚝 멎는 천덕기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었다.

예리한 칼날은 어둠속으로 녹아들어가듯 하다가 다시 어둠과의 경계를 분명히 했다.
그가 칼날에게 물었다.

너는 생목숨을 이렇게 절단 내자고 세상에 태어났는가.
나는 너의 그 날카로운 경계를 언제쯤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일까.

칼날은 아직까지도 제 몸을 가늘게 떨며 우웅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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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49 - 칼에게 묻다_ 목어내력 07]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8 18:35
조회수: 2013 / 추천수: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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