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28
['나무물고기' 75 - 별을 보다]

꽃지는 목어의 턱밑 지느러미 옆에 자리를 만들고 청둥이는 멈칫대다가 내 옆에 주저앉았다.

물속 북쪽 하늘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맑게 게인 밤하늘엔 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눈앞에서 유난히 반짝거리는 길잡이 별이 망치를 들어 용의 등짝을 내리쳤다.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진 국자별이 용을 담아서 퍼내려고 물속 검은 바닥을 스치듯이 뒤를 쫓아가자
망치로 강하게 두들겨 맞은 용별이 국자를 피해 도망가느라 긴 몸을 꿈틀대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두운 천장에 붙어있던 작은 도마뱀이 그런 용을 내려다보며 낄낄 웃었다. 직녀가 무릎에 놓인 거문고를 뜯다가
용의 꼬랑지부터 담으려 안갖 힘을 쓰는 국자별을 바라보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속에는 어느덧 가을바람이 불었다.

별들이 하는 짓을 바라보고 있던 청둥이가 목을 길게 빼서 주둥이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젠장! 밤만 되면 용은 망치로 얻어맞고 저놈의 국자는 날마다 용 꼬랑지만 쫓아다니기나 하다가 날밤 까고....
저걸 냉큼 담아서 못 퍼내나? 쯧쯧 오늘밤도 국자별은 허탕만 칠거야. 하믄, 저 용은 백 개의 눈이 달렸다지.
그러니 국자별이 저 용을 잡을 수 있겠어?’

또 길잡이 별이 망치로 용의 등짝을 내리쳤다. 용이 꿈틀거리며 백 개의 눈을 끔쩍거렸다.
청둥이가 마치 자기 등짝을 얻어맞은 것처럼 깜짝 놀란 시늉을 하며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괙! 애그 또 얻어맞고 있네. 저 놈 기린은 용이 두들겨 맞는 것이 뭐가 좋아서 목을 길게 삐쭉 내밀고 구경만 하고 있어.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는 흔한 말도 하늘에선 통하지 않지!’

물속 바닥에 길게 놓여있던 국자가 용의 꼬리를 쫓느라 발딱 일어섰다.

‘저것 봐! 국자별 너는 백날 힘써봐야 용을 절대 못잡는다.
네가 저 용 꼬랑지라도 국자 안에 담으면 내가 한턱 크게 쓴다’

혼자서 쫑알거리고 있는 청둥이를 내가 곁눈질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날개로 꽃지의 등을 덮어주어야 하는데...’

청둥이가 고개를 빨딱 쳐들어 목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남녀칠세부동석!’

‘그래두 꽃지의 등깍지 풀이 완전하게 굳어야 낼 우리들과 함께 물속도시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뭐 내가 아쉬울게 있나? 자기일이니 자신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뭘’

꽃지가 등깍지 밑에서 까만 두 눈을 쑥 내밀어 딴청부리고 있는 청둥이를 바라보자
목어가 턱지느러미로 꽃지를 가볍게 밀었다.  꽃지가 옆걸음으로 청둥이 곁에 걸어와서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그래, 너의 날개로 덮어 줘’

청둥이가 꽃지의 말을 못들은 채 고개를 쑥 빼서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훨씬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그그, 저놈의 용이 또 얻어맞고 있네. 괙괙괙 이번엔 너무 강하게 때렸는데 상당히 아프겠다.
저러다 오늘밤에 허리가 부러질지도 몰라’

목어와 내가 동시에 똑같이 말을 했다.

‘청둥아 이제 그만 날개를 펴라’

또 청둥이가 딴청을 했다.

‘하이구! 저 국자야! 저 놈의 국자는 맨날 용 꼬랑지 근처에서만 맴돈단 말이지! 불끈 일어나 용의 대가리부터 담아야지.
저런 멍청한 국자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깨버려야 돼! 괙괙괙’

내가 손을 들어 청둥이의 머리에 군밤을 멕였다.

‘으홧! 이번엔 왕창 큰 망치가 세상이 흔들거릴 정도로 용의 머리를.... 아니 내 머리를 때리네!
엉! 이 인간이 왜 날 때리고 난리야 괙괙괙’

내가 눈짓으로 청둥이 오른쪽에 있는 꽃지를 가리켰다. 꽃지가 쏙 내민 까만 눈을 좌우로 한 번 흔들더니
청둥이의 날개 밑으로 조심스럽게 기어들었다. 청둥이가 못 이기는 채 날개를 슬쩍 들어주었다.
하늘엔 처음보는 별들이 자꾸만 새롭게 돋아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청둥이의 몸이 꿈쩍 놀래더니 눈꼬리를 번쩍 치켜들며 작은 신음소리를 몰래 삼켰다.
꽃지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청둥아 조심해. 내 등깍지 가장자리나 집게발에 돋아있는 가시를 조심해야 돼.
날개에 너무 힘을 주면 가시에 찔릴 수 있어. 청둥아 고마워’

‘저것 봐! 괙괙괙 직녀가 밤새껏 거문고를 타도 저 백조 녀석은 날개만 쫙 펴고 있지 도무지 춤을 출 생각은 없는가 보지.
헹! 내가 저 자리에 들었으면 직녀의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멋진 춤을 출 수 있는데....’

청둥이의 날개밑은 따뜻했다. 꽃지도 기분이 좋은지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을 잡아당겨 속으로 깊이 감추고
그 아래 얇은 입술 사이에 말간 거품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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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75 - 별을 보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6:57
조회수: 1967 / 추천수: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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