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20
['나무물고기' 76 - 날개로 덮다]

목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언가 깊은 생각 속에 들었다.
저 물속 도시에 들어가는 것은 꼭 별똥별에 새겨진 이 세상의 미래를 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쩌다 저런 괴물 같은 도시가 이 아름답던 바다에 생겨나게 되었는지 바로 저 도시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아까 하얀 사람이 물속도시로 들어가는 통로를 말해주면서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위험하다. 언제부터 저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아무도 확실한 것을 모른다.
이 바다 주변에 도시와 공장이 생겨나면서 그와 똑같은 도시가 물속에서 자랐다는 말도 있고 저 소야바다 물막이 방조제 공사가 시작되면서
이 물속 도시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살아있는 생명은 아무도 물속 도시에 들어가질 못했다. 어쩌다 길 잃은 몇 생명들이 잘못 들어서기도 했지만 살아 돌아온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쓸모가 끝나 내쳐져 버려진 것들만 들어가는 곳이다. 우리들 중에 어느 호기심 많은 중음신이 그곳에 들어갔으나
결국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오늘날 이 하늘 아래 위험하지 않은 곳이 어디에 있으랴마는 부디 조심해라.
무사하다면 곧 저승에서 만나 나도 저 물속도시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두통이 조금씩 가라앉는지 이제 별들도 더욱 초롱초롱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초가을의 밤이다.
바깥세상엔 나무들이 단풍을 준비하느라 거뭇하게 변해 갔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푸른 잎이 단풍 색깔로 채 바꾸지 못하고
거뭇한 상태에서 잎을 떨궈내는 나무들도 많아졌다. 나무조차 숨을 쉬기에 버거운 세상이 된 것이다.
언제부턴지 사람들은 땀을 내지 않고 일하는 것을 최상의 것으로 생각했다. 대신에 땀을 내기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어
공원을 죽을둥 살둥 모르고 뛴다든가 손을 머리 꼭대기 까지 올려가면서 마치 성난 사람처럼 어디로 싸우러 가듯이 걷는다든가
목욕탕 감방 같은 곳에 갇혀 땀을 쥐어짜듯 하거나  혹은 기계 뜀틀 위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달려서 억지 땀을 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땀을 내서 일하는 것을 경멸했다.
일하면서 흘리는 땀을 무시하는 누추한 삶이 이제 마음껏 숨조차 쉬기 힘든 세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내 숨을 따라 별들도 숨을 쉰다. 숨을 들이킬 땐 별빛도 커졌다가 숨을 내쉬면 별도 숨을 내쉬는지 그 빛이 떨리면서 잦아진다.
내가 숨을 빠르게 쉬면 별빛 또한 빠르게 빛을 늘렸다가 조이기를 반복하고 숨을 천천히 쉬면 별빛도 역시 천천히 반짝 거린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별들과 함께 숨을 쉬다가 문득 청둥이를 불렀다.

‘청둥아 자니?’

아무 소리가 없다.

‘청둥이의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소리가 요란해서 나도 잠을 못 이루는데 네가 잠이 들었을 리가 없지. 킥킥’

꽃지가 한쪽 집게발을 가볍게 마주쳤다.

‘청둥이는 잠들었는가 보다. 그럼 꽃지야. 등의 상처는 어떻니?’

‘네. 아까 치료하고 나서는 조금 쓰렸는데 청둥이가 날개로 덮어줘 따뜻해선지 이젠 한결 편해졌어요.
낼쯤엔 완전히 나아질 거예요’

목어에게 물었다.

‘아까 하얀 사람들을 헤치고 목어에게 다가와 빙긋 웃던 건장한 이는 서로 아는 사이 같던데, 혹시....’

목어가 조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맞아. 나를 깎아서 목어로 만들어 준 그 화원의 아버지인 김무장이야. 삼백년 전 조선 최고의 검이라던 김무석!
그가 지금까지 이곳 어두운 바다 속을 헤매고 있었다니....그가 잠깐 나에게 명우지와 아들에 관해서 물었지.
내 이야길 다 듣고 평온한 얼굴로 올라갔어. 이제 곧 저승에서나마 그의 아내 명우지를 만나겠구나’

그때까지 주둥이를 땅에 내려놓고 잠든 척 하던 청둥이가 갑자기 목을 홱 쳐들며 떠들었다.

‘뭐라구! 조선 최고의 검, 김무석! 나도 몇일 전 그가 유포리 모래밭에서 날아다니며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봤다 봤어!
병풍처럼 늘어선 열두명의 왜무사들을 단 칼에 물리쳤는데...아하! 그가 나타났었다니! 나는 왜 그를 못 봤지?
잉! 나에게 말해 주지. 뭐 인사라도 하며 그의 손이라도 잡아볼 걸’

‘칫! 삼백년 전에 죽은 사람을 네가 어떻게 몇일 전에 보았다구 그래?’

‘암! 보았지. 고수는 고수가 알아본다구. 아하! 그의 검술 솜씨는 대단했어!
아니...내가 꿈에 보았던가? 꿈이든 뭐든 어쨌던 그가 긴 협도와 대결할 때 이렇게... 바로 이렇게 칼등을 어깨에 대고
요... 요렇게 단 일획에 상대방을 잠재웠던 것을.... 아야! 내 옆구리! 에쿠!’

청둥이가 김무석의 검술을 흉내 내려고 날개를 거칠게 움직이다가 꽃지의 등깍지 끝 가시에 옆구리를 찔렸는지 비명을 질렀다.
꽃지가 집게발을 마주쳐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청둥아 조심해야 된다고 했잖아. 미안해’

목어가 모두에게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라고 했다.
우리가 등을 붙이고 있는 쌀섬 뒤쪽 편에서 돌멩이 같은 것으로 쇠를 내려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리고 가끔 쇠사슬을 이리저리 끄는 소리도 들렸다.

‘파도에 뭐가 부딪치는 소리도 아닌 것 같고...
이 야밤에 누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일 아침에 뒤쪽으로 돌아가서 살펴보자’

목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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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76 - 날개로 덮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7:03
조회수: 1991 / 추천수: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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