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10.01
['나무물고기' 77 - 물속의 아침]

오늘 아침엔 목어가 맨 먼저 일어나서 나를 불러 깨웠다.

물속의 아침은 다른 때 보다 희뿌옇기는 하지만 훨씬 더 다양하고 야릇한 색깔들이 춤을 춘다.
물위를 스치듯이 사선으로 꽂히는 아침 햇살이 절반은 반사되어 튕겨나가고 절반만 물속으로 들어온다.
굴절되면서 들어오는 햇빛에 물속에 떠다니는 미세한 분진과 부유물질들이 제각각 다른 색깔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가끔 바닥에 박혀있는 깨진 유리조각이나 거울조각, 녹슬지 않은 쇠붙이 들이 햇빛을 받아서 반짝 거리기도 한다.
빛을 발하는 이 다양한 색깔들의 군무를 아침 햇살이 물속에 끼어 들어와 생긴 산란현상이라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어떤 생명감이 스며들지 않고는 이런 신비한 장관을 이룰 수 없는 것이리라 나는 확신했다.
검은 바닥에 폐건물들의 검은 그림자가 근경을 이루고 그 뒤에서 반쯤은 묻혀있고 남은 반쯤은 위로 펼친 채
고요하게 흐느적거리는 폐비닐에도 한 뭉치의 아침 햇살이 투과하고 있다. 비닐에 부분적으로 묻어있는 녹조 이끼가
햇빛 한줄기를 받아 마치 움직이는 스테인드그라스처럼 아름답다.
검은 색과 희뿌연 물속 공간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이 떠다니며 자기 색깔을 내고 있는 부유물질과 아침 햇살 사이에
음악 같은 것이 흐른다. 음악이 빛과 색을 만드는지, 빛과 색의 움직임이 음악을 만드는지는 내가 알바 없지만
저 빛과 색깔의 움직임 사이에서 들리는 소리는 분명히 음악이다.
그 날 햇빛의 모양이나 기온 그리고 바람에 따라 음악도 역시 날마다 다른 소리를 만들었다.
그 중 부피가 조금 더 커 보이는 부유물질이 요상한 색을 내면 그것이 마치 무슨 신호나 되는 듯이
수없이 많은 주위의 분진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몰려온다. 부피가 큰 부유물질을 중심으로 미세한 티끌들이
빙빙 돌기 시작하면 멀리 있는 분진들도 갖은 색깔을 내면서 모여든다.
큰 것이 위로 올라가면 모두 따라서 위로 움직이며 거대한 색깔들의 기둥을 만들고, 수면 위까지 도달하여 잠시 숨을 고르다가
큰 것이 다시 다른 색깔을 보이면 그를 가운데 두고 원심력이 작동하듯 모두 흩어져서 수면에 둥둥 떠 있다가
또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아래로 너울대면서 내려온다.
그것들이 춤을 추면서 내려오다가 물속 바닥 두어 길 위에서 딱 멈추어 서서 자신들이 제각각 내는 색깔을 일제히 거두어들이면
물속은 잠시 어두움을 회복한다.
이 짧은 어둠속에서도 그것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자기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중간 크기의 부유물질로 모여들어서
군데군데 작은 무더기들을 이룬다. 그 작은 무더기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하면 다시 제 색깔들로 반짝이다가
다음 군무를 준비하기 위해 서로 의논을 하는지 작은 무더기들이 좌우로 흔들리며 점차 각각 한 가지 색깔로 변해 간다.
무더기별로 색깔이 통합되어 이제 그 색깔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춤을 추는 것이다.
빨강색을 띠는 무더기는 강렬하게 떨리면서 위로 치솟고, 노란색 무더기는 물 한가운데서 둥글게 돌며 점점 넓게 퍼져가고,
푸른색 무더기는 위아래도 콩콩 뛰면서 점점 응축되어 색깔이 더욱 선명케 변하고, 검은색 무더기는 길게 줄을 맞추어
구불구불대면서 돌아다니다가 흩어져 아래로 가라앉고, 보라색 무더기는 앞뒤로 나서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다가
제자리에 축을 두고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수백 수천의 무더기들이 자기 색깔에 따라 추는 춤이 수백 수천의 모양이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에 수백 수천의 무더기들이 위로 치솟아 일제히 부푼 몸을 터뜨리며
수만 수억의 분진과 부유물질들이 흩어져 제각각의 수만 수억의 색깔들을 반짝이며 물속 천지를 가득하게 메운다.
이제 물속에 흐르는 음악도 평정심을 되찾고 물속을 떠도는 티끌들도 제 갈 곳을 찾아 나선다.
그렇다, 물속에 떠있는 저 티끌들은 살아있다. 아침햇살을 받을 때만큼은 살아있는 것이 확실하다.

나는 물속에 들어온 아침 햇살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눈을 거두고 청둥이와 꽃지를 깨우기 위해 그들을 찾았다.
꽃지는 먼저 일어나  저쪽에서 뒤돌아 앉아 집게발로 자신의 등과 배를 쓸며 다듬고 있었다.
청둥이는 간밤에 잠버릇이 심했는지 내 발밑까지 뒹굴어 내려가 있었다. 날개를 아무렇게나 펴서 바닥에 등을 대고
배와 가슴은 하늘로 향해 누워 물갈퀴 발을 쭉 뻗어 벌린 채 푸르르 푸르르 코를 골고 있었다.
태평스럽게 잠자는 그의 모습은  내 어릴적 동네 앞 치킨가게 쇼윈도우에 진열되어 있던 양념 통닭을 생각나게 했다.
몇 번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내가 심하게 흔들어 깨우자 벌떡 일어나더니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면서 제일 먼저 꽃지를 찾았다.

‘젠장할! 간밤에 누가 나를 이곳에 옮겨다 놓았지?
분명히 어제밤에 저곳에서 잤는데...엥! 내 날개 밑에서 잠자던 꽃지는?’

‘꽃지의 등을 좀 덮어 달랬더니 혼자서 궁굴어서 내 발끝까지 내려가 놓고는 뭔 소리?
청둥이의 저 고약한 잠버릇 때문에 꽃지가 고생 좀 했겠다’

꽃지가 단장을 끝내고 뒤돌아 옆걸음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괜찮아. 청둥이가 어제 굉장히 피곤했던가봐.
잠꼬대로 노래도 부르던데 나는 자장가 삼아서 잘 잤어’

목어가 꽃지의 등에 붙인 풀이 굳었는지 확인 했다.

‘응! 풀이 확실하게 잘 굳었다. 청둥이가 날개로 잘 덮어주어서 아주 단단하게 굳었어.
아침에 보니 등깍지에 붙여진 빨강 플라스틱 조각도 훨씬 더 예쁘구나’

‘괙괙괙 그렇지! 내 날개로 덮어준 덕택이지 뭘! 자 빨리 출발하자구’

자신의 요란한 잠버릇이 쑥스러웠던지 다짜고짜 앞장을 서서 먼저 출발 하려고 나대는 청둥이를 목어가 불러 세웠다.

‘어제 밤새 내내 이 쌀섬 뒤쪽에서 돌멩이로 뭔가를 내려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어.
어제 하얀 사람이 물속 도시의 문이 열리는 시각은 정오라고 했다.
오전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으니 쌀섬 뒤쪽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인지 살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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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77 - 물속의 아침]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7:11
조회수: 1956 / 추천수: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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