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9.29
['나무물고기' 78 - 쇠사슬을 풀다]

쌀섬 바다 밑의 바위들은 하얀 쌀색깔을 닮아 모두 하얀색이다.
이미 폐사한 굴 껍데기와 따개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틈새로 바위의 하얀색들이 반짝 거렸다.
청둥이가 앞장을 서서 하얀 바위들을 따라 쌀섬 뒤쪽으로 향했다. 물막이 방조제로 이곳 소야바다가 모두 막혀있기는 했지만
쌀섬 뒤쪽으로 대부섬과 송산사이의 마산수로가 아직은 트여 있어서 밀물과 썰물에 따라 신선한 바닷물이 조금은 유통되는 곳이다.
신선한 바다냄새가 코긑을 잠깐 스쳤다가 곧 사라졌다. 바다의 비릿하고 짠 냄새엔 그리움이 묻어 있다.
저 냄새가 코에 닿을듯 말듯 하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냄새는 손에 잡을 수 없는 그리움이다.

앞에서 헤어가던 청둥이가 먼저 보았다.
멀리 보이는 하얀 바위들 사이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것 역시 하얀 것이었다. 우리들이 그곳을 바라고 빠르게 접근을 하자
그 하얀 것이 더욱 꿈틀대며 뭐라고 악을 써대는 모습이었다.
눈을 가슴츠레 떠서 초점을 잡아 가늠을 했다. 그것은 하얀 사람이었던 것이다.
청둥이가 헤엄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저것은 하얀 사람인데.... 괙! 바로 어제 모든 영혼들을 몽땅 떨이로 공짜 저승길을 잡아주었는데
간밤에 벌써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남? 아님, 너의 힘이 부쳐서 몇 명이 채 못 올라가고 남았는가 보다’

저 하얀 사람이 다시 온몸을 뒤틀면서 악을 써댔으나 나는 알아들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청둥이가 더듬거리며 통역을 했다.

‘너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마구 악을 써대고 있다. 자신은 절대 저승에 들기 싫단다.
네가 저 친굴 잡아 먹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저 난동을 부리는 것이지?'

우리들이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 그의 몸은 검은 녹이 슨 쇠사슬로 큰 바위에 칭칭 묶여 있었고
그는 돌멩이를 집어 그 쇠사슬을 두들겨서 끊으려 애를 쓰는 중이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기겁을 하면서
돌멩이를 곧 던질 듯이 팔을 들어 올리며 또 악을 썼다. 그의 등에 둘러맨 삼지창이 노란빛을 번쩍였다.

‘너 산자야! 가까이 오지 마라! 싫다, 나는 저승길에 오르기가 싫어!
바로 이곳 이승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 그 일을 끝내기 전엔 나는 절대 저승길에 들어선 안돼!’

목어가 물었다.

‘너를 누가 이렇게 쇠사슬로 바위에 묶어 두었는가?’

‘흐흐흐 내가 묶었어. 어제 저 인간이 우리 하얀 것들을 저승길로 들게 하는 한소리를 할 때
내 몸이 저승길에 올려지지 못하도록 내가 여기 큰 바위에 스스로 묶었지.
그런데 내가 너무 칭칭 동여매어 놓았던지 어제 밤새 이것을 끊어 풀려고 해도 그럴수록 더 매듭이 조여들구나.
목어야 이것을 좀 풀어줄 수 없겠냐? 글구 저 인간은 제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해!’

목어가 가까이 가서 쇠사슬에 한참이나 지그시 입을 대어 무엇을 느꼈는지
조용히 뒤로 물러나 그에게 말했다.

‘이 쇠사슬은 어디에서 가져왔는가?’

‘흐흐흐 나도 알고 있지. 목어 너도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천 년 전에 입에서 불을 뿜고 번개를 부릴 줄 아는 독갑이가 이곳 소야바다 앞 영흥도에 살았는데
밤만 되면 서해바다 여기저기 물속을 휘젓고 다니며 불을 뿜어 모든 해초가 불에 타고
간밤에 불에 데어 죽은 물고기들이 아침 바다를 가득 덮었다.
심지어 어부들이 쳐놓은 석살과 목살을 허물어 뜨리고 고기잡이 배를 뒤집거나 태우기 일쑤였다.
그런 짓에 항의하는 어부들에게 번개를 내리쳐 많은 사람들을 상하게 했다.
그러나 어부들은 그에게 밥과 술을 주어 달래가며 함께 살았는데 날이 갈수록 독갑이의 횡포가 심해졌다.
선재도 당산에 사는 한 선인 어부가 독갑이의 포악한 짓을 보다 못해 저 놈을 묶어둘 쇠사슬을 만들 생각으로
정왕산 원곡리에 사는 대장쟁이에게 부탁을 하니 새우 눈알젓 한 동이와 바꾸자고 했다.
그 선인 어부가 십수년 동안 새우를 잡아서 눈알만 빼내어 젓을 담궈 겨우 한 동이를 만들었다.
새우눈알 젓갈과 바꾼 쇠사슬은 금과 동에 부적을 태운 재와 섞어 만든 신비한 사슬이었다. 선인 어부가 그 쇠사슬로
독갑이를 칭칭 감아 오이도 북쪽 편에 있는 작은 섬 옥귀도 바다 밑 감옥에 가두었다.
흐흐흐 지금 사람들은 그 감옥이 있던 섬을 구슬 玉에 귀할 貴 자를 써서 예쁜 이름으로 부르더구나.
내 몸을 묶어 둔 이것이 바로 그 쇠사슬이다.
목어야! 넌 이 사슬을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쇠사슬에 묶여있던 독갑이는 어찌 되었는가?’

‘흐흐흐 그 독갑이? 여전히 맹랑하더군. 내가 쇠사슬을 풀어 주었더니
고맙다는 말도 없이 투덜대면서 황급히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옛집은 어딘가?’

‘바보! 천년도 훨씬 지났는데 독갑이의 집이라고 온전히 남아있겠는가.
요즘 인간들은 재주가 워낙 뛰어나서 독갑이들도 당해낼 수 없어.
영흥도 남쪽 업벌리 바다 속에 있던 그의 옛집을 뭉개고 인간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굴뚝을 쌓아
사시사철 불을 뿜어대고 있지.  소야호 바다 위를 가로 지르는 전깃줄이 그 굴뚝에 연결되어 있다구!  
독갑이는 저 전깃줄을 타고 굴뚝 속으로 들어갔어.
네가 판검사나 되는 듯이 이것저것 묻지 말고 좌우지간 이 쇠사슬 좀 제발 풀어줘!’

‘나에겐 그럴 힘이 없다. 이것 역시 살아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안돼! 저 인간은 싫다. 나는 아직 저승에 올라가면 안돼!’

‘그럼 할수없지. 영원히 사슬에 묶여서 견뎌보아라.
자! 우리는 그만 물속 도시로 향하자‘

우리들이 멈칫거리며 뒤돌아서 출발하기 시작할 때 그가 손에 묶인 쇠사슬로
바위를 마구 후려치면서 목어를 불러 세웠다.

‘기다려! 일단 이 쇠사슬만 풀어 주는 것을 약속해라. 그럼 내가 물속 도시로 들어가는 것을 돕겠다’

우리는 물속 도시로 들어가는 것을 돕겠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뒤돌아섰다.
목어가 쇠사슬을 풀어 주라고 나에게 눈짓을 했다. 내가 다가가서 쇠사슬이 묶여진 모양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면 그는 즉시 얼굴을 외로 돌리면서 자꾸만 나의 눈길을 피했다.
나는 쇠사슬의 묶인 구조를 파악한뒤 헝클어진 가닥을 추슬러서 사슬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그러나 먼저 풀려야 할 순서대로 쇠사슬 끝이 스스로 미세하게 진동을 하면서 표식을 해 주었다.
나는 쇠사슬을 풀면서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나의 눈길을 피하는가?’

‘산자들이 죽은자를 피하듯이 우리 죽은자들도 산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가급이면 나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쇠사슬을 모두 풀어 내려놓자 하얀 사람은 어깨 뒤에 둘러 맨 삼지창을 몇 번이고 확인하더니 먼저 출발했다.
목어가 두어 길쯤 가다 말고 뒤돌아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쇠사슬로 다가가 나에게 말했다.

‘저 쇠사슬에서 사슬 한 개만 떼어내 보관해라. 쓸모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쇠사슬을 집어 들고 쉽게 떼 낼 수 있는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뒤적이자 한쪽 맨 끝 사슬고리 하나가 스스로 벌어지면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청둥이가 헤엄칠 때 몸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도록 왼쪽 발에 발찌 모양으로 채워 주었다.

‘꽃지는 등에 빨간 덮개 모자를, 너의 야무진 물갈퀴 발에는 이 멋있는 금동 발찌를!’

청둥이가 하얀 사람과 거리를 두고 앞장을 섰는데 처음엔 왼발에 찬 발찌 때문에 몇 번 서툰 몸짓을 보였다.
그러나 금방 익숙해져서 사슬 발찌가 균형추 노릇을 해주어 헤엄칠 때 마다 오른쪽으로 치우치던 몸의 방향이
거의 정면을 향하도록 바로 잡아졌다. 청둥이의 왼쪽 날개가 아침 햇살을 받아 유독 하얗게 빛났다. 목어의 등위에 앉아있던
꽃지가 그런 청둥이의 모습을 부러운듯이 바라보았다.
한참 헤엄쳐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 버려진 긴 쇠사슬이 스스로 또아리를 틀어서
하얀 바위 위에 반듯이 사려 앉아 우리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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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78 - 쇠사슬을 풀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9 17:20
조회수: 2019 / 추천수: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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