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5.14
['나무물고기' 22 - 변하다]

그가 황홀한 유영을 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나의 앞에 멈추어 섰다.
알록달록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의 모습을 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나를 향해 그가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손을 마구 흔들며 외쳤다.

‘마술이야, 마술! 너의 모습은 완전히 새롭게 변했어!’

‘저 염색공장 폐수 덕택에... 오랜만에... 내 낡은 몸에 새 색깔을 올렸어! 휴우~’

‘화! 항상 삐그덕 거리던 너의 낡은 몸이 이렇게 새것으로 변할 수 있다니...’

‘큭큭... 패션은 항상 겉모습만 다르게 변화시키는 것이지!
새 색깔을 올렸다고 해서 여기저기 썩고 닳아서 삐걱대는 내 몸을
변화시키지는 못 해.
그렇지만, 새롭게 색깔을 몸에 올리고 나니깐 뭔가... 새로운 기분이 들긴 해.
그런데 내가 너무 야하지 않아?‘

나는 염색 폐수가 쏟아져 색깔의 무지개빛 홍수를 이루고 있는
저 앞을 바라보면서 아쉬운 듯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나도 한번... 멋지게 할 수 있는데...’

‘안돼! 넌 저 폐수에 질식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대신에 오늘은 내가 새 옷으로 갈아입었으니 잠시 내 등에 널 태워 줄께.
내 마음이 변하지 전에 빨리 나의 머리위로 올라 타!
별똥별이 떨어진 곳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木魚의 머리위로 올라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아 앉았다.
木魚가 꼬리지느러미를 천천히 흔들자 둔중한 그의 몸이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물고기들이 뛰어 놀았던 푸른색 바다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무로 만들어진 물고기 형상의 괴물 목어와 나는 다시 어두운 물속을
헤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지느러미와 꼬리를 움직일 때 마다 그의 몸속 어디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위태롭게만 들리던 삐그덕 거리는 소리도
이젠 정겹게 느껴졌다. 그 소리는 괴물 목어가 살아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나는 목어의 등위에 앉아서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물속을 바라보았다.
어둠속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무수한 씨앗이 숨어있다.
자신의 몸이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 할 때 그 씨앗은 발아하기 시작한다.
문득 화사한 햇빛에 관한 기억 하나가 어둠속에서 돋아났다.

누이가 이 도시를 떠나기 전날 함께 오이도 해변가에서 낚시를 담그고
화사한 봄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다.
살랑대는 따뜻한 봄바람에 누이의 머리카락이 나부끼며 자꾸만 이마위로 내려왔다.
수면에서 반사되는 환한 햇빛이 사랑을 상실한 누이의 억한 심사를 건드렸던 것일까.
누이가 자신의 이마위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쥐어뜯듯이 쓸어 넘겼다.
뽑혀진 머리카락 몇 올이 바람에 날려 수면위에 내려앉자 봄바람에 찰랑대는
작은 물결들이 갑자기 정지된 것처럼 멈추었다.
수면뿐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온통 하얗게 변했다.
단지 수면위에 떠있는 머리카락만 까만색 이었다.
나는 이 어두운 물속에서 그녀의 까만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았던
이십여년 전의 화사한 봄빛을 기억해 냈다.
수면 위에서 반짝이던 몇 올의 머리카락도 이 물속 바닥 어딘가에
가라앉아 진즉에 삭아버렸을 것이다.
그 화사한 봄빛도 함께 썩어버렸을 것이다.
누이는 분명히 그날 색이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은 간혹 이렇게 어둠 속에서 슬며시 돋아났다.

나를 등위에 태운 목어는 물속 새로운 도시를 향해
폐허가 된 구도시의 시가지를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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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22 - 변하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8 16:54
조회수: 1828 / 추천수: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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