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6.19

['나무물고기' 28 - 회오리 치다]

항상 꿈은 달콤한 장면으로 시작되어 무서운 장면에서 깨어난다.
달콤함과 무서움 사이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장면들이 끼어들었다.

집 앞 출근길 골목 구석에 날개를 단 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슬그머니 도망간다.
전철역엔 소총을 맨 군인들이 줄지어 서있다.
군인들 사이에서 고교시절 친구가 김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길을 피하느라 더 빨리 걸었다.
시청 앞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수학 공식 하나를 외우면서
멀리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
시청 담벼락 위로 축구공 하나가 튀어 올랐다.
그 사이에 시청 건물이 오층 목탑으로 변했다.
목탑 꼭대기 덧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이 여성은 어제 밤 TV 뉴스에도 등장했었다.
사람들이 목탑에 오르기 위해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맨 뒤에 날개를 단 고양이가 들어가다 말고
나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벌써 원곡동의 태국 레스토랑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허리춤에 찬 라디오를 들으며 걷고 있다.
저런 라디오쯤이면 베게머리에 켜두고 잠을 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찻길 건너편 밀림을 뚫고 돌로 만든 거대한 사원의 꼭대기가 보였다.
반바지를 입은 관광객들이 기찻길을 건너왔다.
이 기찻길의 끝은 서울역이다.
서울역 광장은 마치 골프장처럼 잔디가 돋아있다.
잔디밭 위에 사람들이 누워있다.
사람들은 서로 누군가를 찾고 있다.
나는 여전히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 깨어나든 꿈은 허무하고 또 허무하다.
꿈은 꿈일 뿐이다.

木魚가 눈빛으로 앞을 가리켰다.

물 바닥에 켜켜이 쌓여있는 검은 오니들이
회오리처럼 위로 퍼져 오르고 있다.

사람들은 폐기처분한 사랑을 몸에 눌러 붙어있는 지저분한 때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날마다 목욕을 즐기는 것은 몸을 씻기 보다는
가슴속에 눌러 붙은 폐기된 사랑의 때를 자꾸만 벗겨내는 일이다.
아무리 아름답던 사랑도 자신의 마음에서 떠나면
가슴속에 찌들어 눌러 붙은 때로 변해 버린다.
지난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은 그 때를 벗겨내는 순간뿐이다.
그 때를 벗겨낼 때마다 비로소 사랑을 추억하면서, 이것이 마지막 기억이라고
언제나 다짐한다.
가슴에 쌓인 때는 무의미하게만 보이는 꿈의 단면과 같다.
실패한 사랑과 꿈은 모두 욕망이 만들어 놓은 종이 꽃이나 다를바 없다.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때가 벗겨져 흘러 내려와
물속 바닥에 두텁게 침전되어 쥐죽은듯이 웅크리고 있던것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위로 퍼져 오르고 있다.

회오리처럼 위로 뿜듯이 내쳐진 오니들의 먹구름이 너울너울 부풀어 올랐다.
시야가 더욱 어둡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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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28 - 회오리 치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8 17:09
조회수: 1811 / 추천수: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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