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30 x 45 cm /종이에 먹과 수채/08.07.08

['나무물고기' 31 - 악을 쓰다]

‘엥! 저 쬐끄만 꼬마 녀석이 못할 말이 없네!’

‘호! 잔인한 저 인간 동물이 木魚아저씨 등에 어떻게 올라타 있지? 괙괙괙!
맘씨 좋은 아저씨가 저놈 인간에게 잠시 홀렸나봐. 괙괙괙!‘

‘야! 꽥꽥 시끄러운 꼬마야! 한 쪽 날개도 없는 주제에 어디 저런 것이 오리라고?
그저 꽥꽥 악만 써대면 모두 오리냐?
날지도 못하고 맨 날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주제에 감히 나에게 동물이라고?‘

청둥오리가 제자리에서 펄쩍 펄쩍 뛰어 올라 왼쪽 날개를 크게 펴서
허공에 몇 번 내리치며 더 큰 소리로 대들었다.

‘괙괙괙! 그래 내가 한 쪽 날개밖엔 없지만 너 같은 동물 따윈
이 날개짓 한 방이면 골로 간다!
인간이라는 잔인한 동물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어져야 할 것 들이야! 괙괙괙!‘

‘헹! 저런 딱딱거리는 입만 살아있는 놈!
넌 오늘 내손에 아주 뒈졌다‘

이것은 분명히 사고다.
나는 저 바깥세상에서도 싸움은 커녕 단 한번도 이렇게
화를 내보거나 육두문자에 가까운 욕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선 입 밖으로 욕을 내뱉는 것은 엄한 벌로 다스렸다.
혹시라도 욕설이 터져 나오면 즉시 싸이런을 켠 경찰차들이
엥엥 거리며 달려와 욕을 질러댄 사람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슴에 담은 화가 거의 폭발지경이 되어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욕을 해댔다.
정히 꼭 큰소리로 욕하고 싶으면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음껏 뱉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욕이 한바탕 끝나면 방의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뒤집어썼던 이불은 곧바로 세탁을 하거나 햇볕아래 일광소독을 해야 한다.

이문에 밝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사업의 호기로 삼기 마련이다.
안방에서 화풀이 욕을 한바탕 쏟아 낼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음 이불’이 등장했다.
그걸 뒤집어쓰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별스런 짓으로 욕을 해대도
절대 이불 밖으로 소리가 새지 않는다는 ‘방음 이불’ 광고가
각 신문 1면에 하단 통광고로 장식했다.
심지어 ‘방음 이불’ 속에서 거친 욕을 마음껏 해댈수록 이불 밖으론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후기현악사중주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제품도 개발되었다.
내가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방음 이불’은 카잘스의 바흐무반주첼로가 나온다.

드디어 TV 일일드라마 앞뒤로 ‘방음 이불’의  광고가 나왔다.
화가 잔뜩 난 여성이 안방 문을 열고 거침없이 들어와
아주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아휴~ 너무 화가 치밀어 곧 죽을 것 같아!’ 라고
한마디 홱 뱉으면서 ‘방음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녀는 거의 알몸이나 다를바 없는 수영복 패션이다.
즉시 악을 고래고래 써대는지 이불이 들썩거리면서 바르르 떨린다.
이때 야자수 무늬의 반바지를 입은 사내가 등장하여 들썩거리는 이불 곁에서
손에 쥔 소음측정기의 보턴을 누른다.
이불 밖의 소음 측정치 ‘2~4 dB' 이라는 숫자가 화면 가득히 나타난다.
사내는 응큼한 미소를 지으며 들썩거리는 이불 속으로 소음 측정기를 넣었다가 빼낸다.
측정기의 레벨 창을 바라보던 사내의 눈이 화들짝 놀라며 TV화면 가득히
'98~117 dB' 이라는 레벨의 숫자가 보인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온갖 욕설로 악을 써대던 여성이 ‘방음 이불’을 걷어치우고 나타난다.
여성은 흡족한 표정으로 양볼이 상기되어 있고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돋았다.
여성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 되면서 얼굴에 온갖 교태를 부려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주 시원해요! 이젠 훨훨 날아갈 것 같아요~’
화면에 제품 제목 글씨가 번쩍번쩍하면서 즉시구매를 강조한다.
‘질러바! 방음 이불! 해피타임 통상에서 만든 질러바 가 여러분의 욕생활을
풍요하게 만듭니다!‘

‘해피타임 통상’은 이 도시의 경찰청장 큰아들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뒷소문이
무성했다.

나는 지금 분명히 큰 사고를 저지르고 있었다.
나도 열불이 터져 종주먹을 들이대며 악을 썼다.
‘방음 이불’도 없이 욕을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 야! 임마! 오늘 쬐그만 네놈의 못된 버릇을 확 고쳐 줄께!
나도 씅질이 좀 있는 사람이야!’

‘괙괙괙! 성질 좋아하네! 인간들이란 도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힘도 없는 것들이지!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동물이 도구를 사용하는 너희 인간들이야!  괙괙괙!
갯지렁이 똥꼽보다 못한 인간 동물아! 용기가 있으면 내려 와봐!
이 날개짓 한 방으로 허리를 두 동강 내줄테야! 괙괙괙!‘

‘엥? 내가 갯지렁이 똥꼽보다 못하다구?
네 녀석의 혓바닥은 거꾸로 박혀 있는 모양이로구나.
오냐! 꽥꽥거리는 네놈 모가지를 이 손으로 콱 비틀어서
오늘 저녁 반찬거리로 만들어 주마‘

나는 木魚의 등에서 미끄럼 타듯이 주르륵 내려가
꽥꽥거리는 청둥오리에게 내쳐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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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물고기' 31 - 악을 쓰다]
이름: damibox


등록일: 2009-09-08 17:22
조회수: 1817 / 추천수: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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