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그림창고



(캔버스천에 아크릴릭/910x220 cm/ 1994년 作)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그림을 나는 '이야기 그림'이라고 한다.
현대미술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러한 서사적 구조의 내용을 담은 그림은 촌스럽고 구태의연하기 그지없다.
나는 이러한 시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가름한다.
"현대미술은 현실과 역사에 대한 서사성을 포기했다, 현대미술이 갖는 쾌락과 욕망의 포악성이 자기 역사에 대한 성찰을 포기하기에 이른것이다."

이 그림은 1992년 출옥이후 걸게그림으로는 첫 개인작업이다.
1994년 '동학100주년 기념전'에 출품했고, 98년 일본의 가와사키 교육문화관 갤러리와 부천시청 갤러리에서
도미야마 다에코와 2인전 당시 출품했다.

그림의 한 가운데 어머니와 아들을 중심으로
우측으로는 동학의 '남접'을 그렸다.
전봉준 장군과 1980년대의 농민운동 지도자인 서경원, 윤기현등의 얼굴이 보인다.
전봉준 장군은 그들을 위해 부뚜막에 불을 지피며 밥을 짓고 있다.
전봉준 장군이 순창피노리에서 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후, 그를 따르던 한 여성 동학도가 전봉준의 수급을 몰래 수습하여
석작(대바구리)에 넣어 정읍 고향으로 가져오다가 어느 고갯길에 묻었다.
이후, 고향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하던 전봉준의 외아들은 남의 소를 훔쳐 달아나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잡힌다.
사람들이 전봉준의 외아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며 했던 말이
"지 애비는 나라를 도둑질 했는데, 아들은 소도둑이 되었고나" 였다.
우리시대 역시, '남접'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 이후, 우리사회는 자본주의의 가장 포악한 얼굴을 빈익빈 부익부로 드러내고 있다.
가족이 해체되고 도시의 빈곤은 갈수록 더욱 확장되고 있다.
FTA 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천박하고 미천한 그리고 빌어먹을 미래상이 이미 우리들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좌측으로 최제우의 수급이 궁궐 기둥에 걸려 있고, 해월 최시형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동학에서 주로 사상적 종교적 측면을 강조했던 '북접'을 그렸다.
동학 잔당이었던 '증산 강일순'이 미륵을 자처하고 태어났다던 금산사 미륵불 뒷편으로 시인 김지하가 손바닥 위에서
민들레 꽃을 피우고 있다.
동학 '북접'의 사상적  한 부분이 김지하의 생명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남접'과 '북접'의 통합.
사상과 실천의 탁월한 통합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에
동학이라는 주제를 빌려 그것을 그려 보았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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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달빛에 바랜 눈물 / Pale Tears In Moonlight / 1994년 作
이름: damibox


등록일: 2006-10-17 10:50
조회수: 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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